[헤럴드경제=함영훈ㆍ강승연 기자]다른 교수가 쓴 전공서적을 표지만 바꿔 자신의 저서로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전국 50개 국공립ㆍ사립대 교수 210여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국 대학에서 만연한 교수들의 이른바 ‘표지갈이’ 비리 관행의 실체가 검찰수사를 통해 30여 년 만에 드러나면서 사상 초유의 교수 퇴출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부장 권순정)는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내거나 이를 눈감아준 혐의(저작권법 위반ㆍ업무방해)로 전국 50개 대학 교수 210여 명을 입건, 내달중 전원 기소할 방침이라고 24일 밝혔다.
입건된 교수 중에는 스타 강사와 각종 학회장도 포함돼 있으며, 이들 모두 전국 주요 국ㆍ공립대학과 서울의 유명 사립대 등에 소속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은 또 교수들의 범행을 알면서도 새 책인 것처럼 발간해준 3개 출판사 임직원 4명도 입건했다.
검찰은 최근 3개 검사실과 수사과 등을 동원해 교수 210여명의 소환 조사를 마쳤다.
또 교수들이 속한 대학과 서울과 경기 파주지역 출판사 3곳 등을 압수수색해 범행 증거를 대거 확보했다.
이들 교수들은 1명이 대체로 전공서적 1권을 표지갈이 수법으로 출간했으며, 일부는 3∼4권까지 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수는 의심을 피하려고 책 제목에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대학의 재임용 평가를 앞두고 연구실적을 부풀리고자 이런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원저자는 이공계 서적을 꺼리는 출판업계 특성 때문에 앞으로 책을 낼 출판사를 확보하고자 표지갈이를 묵인했다.
일부는 한번 표지갈이를 했다가 출판사에 약점을 잡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름을 빌려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제자들에게 책을 팔아 인세를 챙기고자 범죄 유혹에 빠진 교수도 있다.
표지갈이는 실제 책을 쓴 원저자와 허위 저자,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탓에 1980년대부터 성행했다.
전국 대학가에서 오랫동안 악취가 진동했음에도 그동안 적발되지 않은 것은 진위 판단이 쉽지 않은 탓이다.
표지갈이는 표절보다 더 나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표절은 전체 논문의 일부를 베끼는 것이라면 표지갈이는 원저자의 연구성과를 통째로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건된 교수들은 대학 강단에서 대부분 퇴출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 대학이 논문 표절 교수와 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이상 선고받은 교수를 재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표지갈이 범행이 대부분 대학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전국의 모든 대학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어서 내년 3월 개강을 전후해 교수들이 대거 강단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예상된다.
김영종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는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출판업계에서 성행한 수법이지만 그동안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았다”면서 “출판사 관계자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입건되는 교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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