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은 지난 9월 절도 혐의로 이모(40) 씨와 진모(33) 씨를 붙잡아오던 중 의외의 말을 들었다. 서울 구로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180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치다 붙잡힌 이들은 범행을 자백하는 대신 자신들이 ‘고문피해자’라고 주장한 것. 두 사람은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하고 고문 피해자라는 사실만 강조해 수사 진행을 어렵게 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2009년 12월 절도 혐의로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로부터 소위 ‘날개꺾기’와 같은 고문을 당한 피해자였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두 사람을 포함한 피의자 21명이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담당 경찰관들이 파면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이씨와 진씨는 당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각각 2000만 원, 15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고문피해자’가 된 후 전문적으로 빈집털이에 나섰다. 고문을 받았지만 범죄가 인정돼 실형을 산 후 지난 2012년 함께 같은 범죄를 저질러 또 다시 경찰에 붙잡힌 것. 당시에는 대담하게 서울과 경기 일대의 빈집을 돌며 총 7차례에 걸쳐 백금 다이아 반지 등 2100만 원어치 금품을 훔쳤다.
한 차례 ‘고문 피해자 출신 절도범’으로 낙인찍혀 죗값을 치렀지만, 버릇이 쉽게 고쳐지진 않았다. 이들은 3년 만인 지난 9월7일 정오께 서울 구로동의 한 다세대 주택의 빈집에 들어가 금반지 등 180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혐의로 다시 구속 기소됐다. 둘이 합쳐 전과가 40범에 이르는 이씨와 진씨는 “함께 장사를 하려고 점포를 알아보러 갔다”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CCTV와 피해자 집에 남아있던 족적 등을 통해 혐의가 입증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현재 서울 남부지법에서 특수절도혐의로 기소돼 이 법원 형사 2단독 박광우 부장판사의 심리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재판에서도 범행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뒤늦게 범행을 인정하고 재판부에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양천서 고문피해자가 배상금을 받고 출소한 후 다시 범행을 저지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에는 피해자 정모(36) 씨가 성동구 마장동의 빈집을 털어 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당시 정씨는 배상금을 받아 숙박업소를 돌아다니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gyelov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