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금수저를 넘어 최상위 부유층 자녀를 가리키는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등장하면서 수저론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고 있다.
다이아몬드 수저는 재벌이나 초고액 자산가 등 상위 0.1% 이하에 속한 자녀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일반인은 진입이 사실상 범접이 불가능한 대상을 일컫는다.
가령 대기업 오너 일가의 3~4세가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15대 그룹의 미성년 친족 39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치가 총 1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9월 현재 이들이 가진 주식액은 총 962억원으로 1인당 평균 25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일반 국민이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수저론이 점차 극단화 양상을 띠고 있는데, 그만큼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체감하는 신분상승에 대한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는 분석이다.
수저로 출신 환경을 빗대는 표현은 애초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mouth·부유한 가정 출신이다)는 영어 숙어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다.
부의 격차뿐 아니라 취업도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성패가 엇갈린다는 일종의 열패감에 자조가 섞여 탄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저론에 대해 “요즘 시대 대학생들의 개인화되고 인터넷화된 시위 문화라고 볼 수 있다”며 “시대를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포기하는 자조의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수저론을 단순히 젊은층의 자조적 푸념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부(富)에서 상속·증여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공개한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논문에 따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9.0%가 됐고 2000년대에는 42.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의 자산이 모두 100만원이라고 치면 1980년대에는 27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받은 것이고 나머지 73만원은 저축 등으로 모은 것이었지만 상속으로 쌓인 자산이 20년 만에 42만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김 교수는 “어느 지표로 봐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세 이상 성인 인구의 상위 10%가 전 국민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6.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현재 본인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확률이 얼마나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한 비율이 2006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공개한 ‘2014 재직자 조사’에 따르면 직업별 평균 최고연봉과 최저 연봉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우석훈씨가 발간한 책을 계기로 ‘88만원 세대’란 용어가 등장하면서 청년 비관 세태의 막이 올랐다.
그 후로 ‘이태백’, ‘삼포세대’, ‘청년실신’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고 최근의 수저론에 이르게 됐다.
청년 비관은 처음엔 단순한 사회고발성 성격이 짙었지만, 점차 자학과 풍자의 개념이 가미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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