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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王 건강이상설] 아키히토 우경화 반대했는데... 아베 독주하나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일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치매 증세를 보이며 건강이상설에 휘말리자 자국 내외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우경화 가속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최근 자국 내 공식행사에서 불과 몇십 분 전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 하거나, 정해진 식순을 잊고 엉뚱한 순서에 연단에 오르는 등의 해프닝을 연출했다. 이전까지 수십 년동안 공식 행사에서 사소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던 그이기에 이런 사실이 현지에서는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그를 견제해온 아키히토 일왕(이상 왼쪽부터)의 건강이상을 틈타 우경화 전선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일왕은 ‘나라의 어른’으로 대우받는다. 공공방송과 신문에서조차 일왕은 일반 대중보다 높은 존재이므로 극존칭을 쓴다. 그의 신변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해가 될 내용은 자진검열된다. 이를 전제로 고려한다면, 현재 일본 내에서 나오는 보도 내용은 일왕의 건강이 그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왕의 건강이상은 단지 일본 자국민의 걱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정세와 외교상 주목할 부분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간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총리를 그나마 견제해온 큰 버팀목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일왕의 신변상 불안은 아베가 더욱 활개를 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 아키히토 일왕은 올 8월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공식행사에서는 처음으로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과거사에 전향적인 모습으로 아베 총리와 대비돼 왔다. 일본의 진보세력 사이에서 ‘평화주의자의 아이콘’으로 여겨질 정도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아키히토 일왕이 조용히 아베 총리의 반대편에 섰다”고 보도했고, 로이터통신은 “미묘한 힐책(subtle rebuke)”이라고 풀이했다. 홍콩 대공보는 16일자 1면에 “일왕이 암묵적으로 아베를 비판했다(暗批)”는 제목을 달았다.

이 추도사를 계기로 아베와 정반대인 일왕의 과거사 인식이 주목받았다. 아키히토 일왕은 부친인 선대 일왕 시대에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에 대해 일본의 잘못을 절감하고 있고,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평화를 강조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반면 아베 총리는 외조부인 A급 전범 출신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잇는 극우 정치를 펼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외면한 채 헌법을 뜯어고쳐 자국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바꿔 놓은 게 단적인 예다. 전범국가란 낙인이 찍혀 있는 일본의 이런 행보에 세계 각국에서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베는 요지부동의 우경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런 아베 총리와 대척점에 서 있었다. 현지 매스컴 등에 따르면 일왕의 팔라우 방문 허가 문제, 왕자 내외의 한국 방문 거부 문제, ‘아베 담화’와 ‘일왕 패전일 메시지’의 내용 충돌문제 등과 관련해 올해에만 네 차례나 수면밑 다툼이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일왕은 역대 총리 부부를 사적으로 사저에 불러 환영 만찬을 하는 전통이 있음에도, 아베 총리는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현지 매스컴은 일왕이 사적으로 아베 총리와 교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일왕은 자국민의 아버지 같은 상징적 존재로, 전국민의 추앙을 받는다. 아베가 표면적으로 일왕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일왕은 내각의 동의 없이는 국사에 간여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아베를 전면 제어할 수도 없다. 이런 미묘한 힘의 관계가 지금 일왕의 신변이상설로 기울어지고 있다. 아베에게 물려진 일왕의 고삐는 풀리고 말 것인가.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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