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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과학 재판 활용①] 범죄자의 뇌는 진실을 알고 있다
[헤럴드경제=양대근ㆍ김진원 기자] 법원이 반사회적 흉악범죄를 저지른 박춘풍ㆍ김하일에 대한 뇌 분석을 사상 최초로 재판에 활용하기로 하면서 어떤 결론을 낼 지 관심이 모아진다.

외국의 경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범죄자의 심리ㆍ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뇌 과학을 비중있게 적용하고 있다. 

▶‘토막살인범’ 박춘풍ㆍ김하일 뇌 분석한다=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오는 16일  ‘팔달산 토막살인’ 박춘풍(55ㆍ중국 국적)의 ‘뇌 영상 촬영을 통한 사이코패스 정신병질 감정’을 이화여대 뇌인지과학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

23일에는 시화호 토막살인’ 김하일(47ㆍ중국 국적)의 뇌 감정이 이 연구소에서 진행된다.

뇌 영상 등 두뇌 분석 자료를 법정 심리와 양형 결정에 활용하는 것은 한국 사법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박춘풍은 지난해 11월 26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동거녀 A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김하일은 올해 4월1일 아내 B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시화방조제 인근 4곳에 버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감정의 핵심은 박씨가 어려서 다친 ‘안와기저부’(눈 바로 뒤 뇌의 일부)와 ‘전전두엽(이마 쪽 뇌)’이 일반인의 뇌와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김씨의 뇌와도 비교한다. 

특별히 다친 적 없는 김씨는 도박 중독이 시화호 범행과 어떤 연관성 있는지도 따로 살필 예정이다.

뇌 영상 촬영 결과 특이점이 발견될 경우 형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김 부장판사는 “박씨는 PCL-R(사이코패스 심리검사)로 측정했을 때 기준치를 넘기지 않았음에도 사이코패스로 진단을 받고 1심에서 가중처벌 받았다”며 “뇌 영상 촬영 결과를 본 뒤 피고인에 대한 유ㆍ불리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씨가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쪽 눈을 다쳐 현재 ‘의안’(가짜 눈)인 상태”라며 “안와기저부가 사람의 공감능력을 담당하는 부위인데 여기를 함께 다쳤다면 공감 능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행동을 못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극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며 “범행 당시에 어떤 심리 상태에서 그랬는지, 그 심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등 피고인에 대한 이해를 최대한 하려는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뇌 감정 방법은 ‘피가 어디로 쏠리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여러가지 형태의 질문과 사진 등을 제시하고 시간대별로 박씨와 김씨의 뇌가 활성화 되는 부위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통해 찾아낸다.

▶ 뇌 과학의 발전, 흉악범 심리 파헤치다= 범죄자와 뇌의 ‘구조적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뇌 분석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방식의 도입 덕분이다. 

fMRI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사람의 의식과 감정 변화에 따른 두뇌 반응을 실시간으로 영상화한다. 뇌신경 전달물질의 산소 소모량 변화에 따른 각각의 뇌 부위 혈류량을 파악하고 이상 여부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뇌 관련 연구는 특히 성범죄 관련 분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검찰이 성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모 대학병원에 의뢰해 정신과적 진단을 시행한 결과 범죄자 가운데 성도착증 환자가 36.4%였고, 소아기호증은 22.7%로 나타났다. 

이어 우울 장애(22.7%), 알코올 의존(13.6%), 조현병(정신분열증)(9.1%)로 나타났다. 성범죄와 정신병과의 연관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일정 부분 입증한 것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ㆍ소시오패스(Sociopath)와 같은 인격장애도 주요 연구 분야 중 하나다. 

미국 브르크하멜국립연구소는 “이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비교적 근래까지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RTCSOTP)을 사이코패스에 적용한 이후 50% 이상 성범죄 재범률을 낮춘 것으로 조사돼 치료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게티이미지]

▶ ‘미제사건’ 수사ㆍ재판서 활용 가능성↑=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중요한 수사나 형사재판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분야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법원의 양형단계에서 뇌영상 증거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뇌기능 장애와 관련된 증거 제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법심리학 장치 중 하나인 거짓말탐지기의 경우 fMRI를 적용해 정확도를 70~90% 수준까지 높였다. 

‘뇌지문감식’이라 불리는 EEG검사기법은 용의자가 알리바이ㆍ사건 순서의 세부사항 등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여부를 평가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미제사건 용의자에 이러한 기법을 적용한다면 상당 부분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신경범죄학의 권위자 에이드리언 레인 박사는 “범죄자는 뇌의 영향으로 위험 상황에 처해도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태연하게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며 “이들은 전전두엽 피질, 편도체, 해마, 각회 등 뇌의 특정영역 기능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떨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국내 법원에서는 현재 ‘정신병질자 평가척도(PCL-R)’, ‘한국 성범죄자 재범위험성 평가척도(KSORAS), 배심원 기피제(배심원 후보자에게 질문표를 보낸 뒤 결과에 따라 배심원 기피를 신청하는 것) 등 정신분석 틀을 활용하고 있다.

▶ “인간 존엄성 침해” 논란은 극복 과제 = 반면 수사기관이나 재판부가 강제적인 뇌검사를 통해 범죄자의 혐의사실을 이끌어내는 것이 적법한 방법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학계 일부에서는 행위자 스스로 인식하지 않은 사항을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밝혀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원의 영장발부에 있어서도 뇌수색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지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극복해야 할 과제 역시 적지 않다. 뇌 손상을 입은 환자의 특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범죄와의 연관성를 추론하기가 쉽지 않고 일반화도 어렵다. 

거짓말탐지기는 피의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부분이 실제로 거짓인 경우 수사상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

탁희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사기관에 의한 강제적인 뇌과학 검사는 불가침이 보장되어야 할 핵심적인 사적생활영역에 대한 침해를 수반하므로 헌법상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경우나 테러와 같이 공공에 대한 급박하고도 중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처럼 명백한 불가피성이 존재한다면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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