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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K 한줄 알았는데?’…‘준강간’ 고소 당하는 남성들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그녀와 전 ‘썸’(연애 전 호감을 갖고 있는 단계)을 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바래다 줬습니다. 그녀가 집 앞에서 저에게 묻더군요. ‘라면 먹고 갈래?’ 그래서 그녀의 집에 들어가 라면을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그녀가 저에게 시큰둥하네요.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한 방송국의 연애상담 프로그램에 흔히 등장하는 사연이다.

남ㆍ녀 패널들은 입을 모아 사연의 남주인공을 바보 취급한다. 

[사진=게티이미지]
여자가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물어봤다면 집에 들어와 그 다음 진도로 나가자는 신호, ‘그린 라이트’(green light)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섣불리 성관계에 동의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간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실제로 호감을 느끼는 여성과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가진 남성이 ‘준강간’(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성이 애초에 합의금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성관계 이후 돌변한 남자의 태도에 앙심을 품고 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범죄에 단호해진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한몫한다.

일례로 회사원 A씨는 호감 단계의 여성 B씨와 성관계를 맺었다가 평생 성범죄자 딱지를 떼지 못할 뻔했다.

A씨는 지난 2011년 1월 B씨와 함께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B씨의 집에 갔다. 두 사람은 안주로 김치오뎅탕을 끓여 술을 마신후 성관계를 가졌다. 다음날 해장국도 같이 먹고 헤어졌다.

그러나 B씨는 그날 밤부터 A씨에게 성관계를 책망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성폭행을 인정하라”며 합의금도 요구했다.

당황한 A씨는 “가볍게 생각하고 성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며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이 발언은 성폭행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고, 1심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B씨는 법정에서 “집에 들어와 술을 더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억울했던 A씨는 항소했고 2년여 간 법정과 구치소를 오간 끝에 최근에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준강간의 애매한 기준이 이 같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범죄를 수년째 다루고 있는 한 여성 국선 전담 변호사는 “여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더라도 어색한 부분이 종종 있다”며 “문자메시지나 사건 전후 정황을 통해 피해 여성도 호감을 갖고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였지만, 성폭행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피해 여성이 갑자기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남성이 억지로 성관계를 가졌고 어렴풋이 저항한 기억이 난다고 주장하면 대부분 준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피해 여성이 합의금을 요구한 정황이 발견되면 ‘꽃뱀’으로 보고 법원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기도 하지만, 피해 여성이 성관계 직후 돌변한 남성에게 앙심을 품고 고소하는 경우라면 준강간 유죄 선고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 형량이 강화되는 추세인 만큼, 호감 정도에서 성관계를 가질 때는 남성도 ‘그린 라이트’를 오해하면 안 된다”며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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