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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슈퍼리치가 궁금해?…사옥에 가보라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천예선ㆍ김현일 기자]“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독일의 화가이자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파울 클레(Paul Klee)가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예술에 대한 정의는 세계 억만장자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옥 안팎에도 투영돼 있다. 견고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으로 완성된 조형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조형물에는 기업의 정체성과 오너의 취향,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오롯이 담겨있다. 직원들에게는 재미와 유머를 주고, 고객에는 은근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아가 신제품을 알리는 흥미로운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오는 10일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15’ 연사로 나서는 세계 산업디자인 3대 거장 아릭 레비(Arik Levy)는 “좋은 디자인이란 산업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과 다른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핵심’으로 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옥 안팎의 조형물 역시 기업의 신념을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세계적 기업의 조형물을 들여다봤다.

구글 잔디밭에 상륙한 ‘버그드로이드’=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Mountain View)에 위치한 구글(Google) 본사에 들어서면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하다. 구글 캠퍼스 ‘빌딩44’ 잔디밭에 구글 휴대전화 운영시스템(OS)인 안드로이드의 마스코트 인형 ‘버그드로이드(Bugdroid)’ 조형물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3m 높이의 녹색 로봇 모양을 한 버그드로이드. 그 주위에는 버그드로이드의 친구 격인 프로요(냉동 요쿠르트), 진저 브래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허니콤, 젤리빈 등 재미있는 조형물이 줄지어 있다.

구글은 새로운 조형물을 안드로이드 새 버전 출시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활용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IT전문 매체는 “구글은 항상 재미있고 은밀한 방식으로 새로운 안드로이드 버전을 발표해 왔다”며 “구글 캠퍼스에 새로운 조형물이 설치되면 그것은 새 버전 출시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5.0은 막대사탕 롤리팝을 들고 있는 버그드로이드가, 4.4은 초콜릿바 ‘킷캣(Kitkat)’으로 분한 버그드로이드가 출시를 알렸다. 지난 8월에는 마시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버그드로이드가 안드로이드 6.0의 출사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구글 캠퍼스에 들어오는 모든 조형물이 새 버전 출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 캠퍼스 ‘빌딩45’에 올라탄 대형 크롬 버그드로이드가 대표적인 예다. 

이 조형물이 최초 공개됐을 때 지구촌 IT블로거들은 새 버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끝내 불발로 끝났다. 당시 안드로이드 커뮤니티 매니저인 폴 윌콕스는 자신의 구글플러스 페이지에 “새로운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왔다. (조형물 형식으로) :-D”라고 써서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나 새 버전과 관련한 루머가 무성해지자 곧바로 그는 “농담이었고, 새로운 안드로이드 버전에 대한 은밀한 발표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조형물 대한 발표였다. :-)”며 이모티콘을 사용해 재치있게 해명했다. 구글은 포브스 400대 부호 10위와 11위에 오른 래리 페이지(순자산 373억달러)와 세르게이 브린(365억달러)이 공동창업한 회사다. 

페이스북 심장 ‘해커 스퀘어’=세계를 촘촘히 연결하겠다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페이스북의 본사에는 대형 조형물이 아닌 초대형 광장 ‘해커 스퀘어(Hacker Square)’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Menlo Park) 페이스북 본사 한복판에 위치한 해커 스퀘어는 직원들의 소통을 위한 광장 역할을 한다.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는 전직원들이 모여 1시간동안 회의를 벌인다.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도 참석해 10분간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50분은 직원들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꾸며진다.

평상시에는 페이스북 직원들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이곳에는 직원을 위한 복지시설도 즐비하다. 일식부터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각종 레스토랑과 자전거 수리점, 오락실 등 편의시설도 갖췄다. 광장 바닥에는 ‘HACK’이라는 대형 글자를 새겨 넣어 상공에서도 ‘페이스북’ 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451억달러(약 51조원) 자산을 보유 중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포르쉐 본사의 명물‘ 인스퍼레이션 911’

하늘을 달리는 ‘포르쉐 3대’=독일의 간판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Porsche)는 올 8월 슈투트가르트 본사 앞에 높이 25m 규모의 이색 조형물을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의 아티스트 게리 주다(Gerry Judah)가 만든 이 작품엔 실제로 ‘포르쉐 911’ 3대가 사용됐다. 작품명도 ‘인스퍼레이션 911(Inspiration 911)’이다. 3대의 자동차가 각각의 기둥 위에 올려진 형상의 이 거대한 조형물은 포르쉐 광장 일대의 새로운 볼거리로 떠올랐다. 창공을 뚫고 하늘을 달리는 듯한 포르쉐 조형물은 자동차에 대한 회사의 강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쉐(72)와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77) 일가의 자산은 448억유로(59조7330억원)로 추정된다. 유럽 최대 부호 가문 중 하나다. 


존슨앤존슨의 ‘모자(母子)상’=타이레놀, 뉴트로지나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1983년 뉴저지에 신사옥을 건설하면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이곳에선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 ‘모자(母子)상’을 만날 수 있다. 당시 존슨앤존슨은 사내에 갤러리를 설치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도입할 만큼 예술경영에 적극적이었다. 현재 헨리 무어의 작품은 사옥 정문 인근에 위치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창업자 존슨 가문 전체 자산은 59억달러(약 6조5900억원)로 평가된다.

사위가 선물한 초대형 ‘라면’=국내에서는 최근 서경배(52)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장인인 신춘호(83) 농심 회장에게 대형 라면 조형물을 선물해 화제가 됐다. 서 회장이 농심 창립 50주년을 맞아 장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김병호 작가에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농심 본사 잔디밭에 설치된 가로 4m, 세로 3m 크기의 이 조형물은 라면 면발을 형상화했다. 면발 아랫부분은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표현했으며 윗 부분은 흰색으로 돼 있다. 흰색은 농심이 앞으로 펼칠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회장은 1990년 신 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씨(47)와 결혼했다. 서 회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40세)에 부친 고(故) 서성환 회장을 잃으면서 선친과 절친한 사이였던 신춘호 회장을 아버지처럼 모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 관계자는 “서 회장은 평소 장인인 신 회장을 존경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룹 모태이자 상징인 라면 조각상이 생기면서 이를 보는 직원들도 반가워하는 반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90억달러(10조2400억원ㆍ포브스 기준) 자산을 보유한 서경배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은 한국 2위 부호이고 세계 억만장자 185위에 올라있다. 


현대카드, 고객불만 담은 ‘통곡의 벽’=기업 조형물 중에는 고객이 중심이 된 것도 있다.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층 로비에는 일명 ‘통곡의 벽’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직원들의 휴게공간 한 켠에 마련된 이 조형물은 60개의 TV 화면에 고객의 불만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흐른다. 현대카드 온라인 사이트와 콜센터에 제기된 고객들의 불만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임직원 모두가 고객의 불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정태영(55) 현대카드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공간이기도 하다.

현대카드는 ‘단순화(Simplification)’를 축으로 한 남다른 디자인 철학을 고수해왔다. 정 부회장은 “기업문화가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이면 상품이 아무리 최신 트렌드에 맞고 혁신적이라고 광고해봤자 설득력이 없다”며 “문화행사나 디자인은 현대카드의 기업 신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 ‘꽃이 된 철’=우리나라 대표 철강기업 포스코 사옥 앞에는 ‘꽃이 피는 구조물’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미국의 화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가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조해 만든 것이다.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9m 높이의 고목에 피어난 꽃은 포스코센터 빌딩의 친환경적인 건축개념과 기업의 미래 지향적인 개척정신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포스코의 이미지’로 명명된 하늘로 솟은 유연한 곡선이 인상적인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작가 김희성이 ‘쇠’와 ‘불’의 밀접한 관계를 연구해 만들었다. 그는 불을 기호화한 붉은색의 기하학적 기둥 형태를 중심에 놓고 그 주변에 인간 문명의 의지를 담은 은회색 금속 형태를 배열했다. 또 작가는 주변의 환경과 조각이 놓여질 위치를 함께 생각했다. 건축과 기업의 이미지가 미래지향적이라는 상징성과 주변의 조화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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