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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인간이 음악에 중독될 수 밖에 없는 이유
#2008년 이탈리아의 음악학자 다니엘라 페라니와 마리아 사쿠만은 생후 3일이 채 안된 아기들에게 여러 음을 들려줬다.그냥 음악과 음 전부를 반음 이동시킨 ‘옮겨진 음악’, 불협화음 등을 들려주며 신생아의 뇌를 스캔했다. 결과는 그냥 음악을 들을 때는 음높이와 음색 같은 음악적 자극을 처리하는 우뇌 반구의 영역이 활동한 반면 옮겨진 음악과 불협화음은 좌뇌 반구의 구역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차이가 났다. 이는 아기들이 태어날 때부터 으뜸음에 대한 감각을 어렴풋이 갖추고 있어 으뜸음이 없을 경우 이를 알아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음악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얘기다. 과학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프 드뢰서가 쓴 ‘음악본능’(해나무)은 우리는 왜 음악에 빠져들까라는 물음을 갖고 뇌과학부터 진화생물학, 해부학, 음악학, 심리학, 교육학까지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답을 찾아나선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뇌의 기본 욕구다. 

음악본능/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 전대호 옮김/해나무

뇌의 상태를 들여다보면, 음악에 빠질 때 우리 뇌의 깊숙한 곳, 변연계에는 버튼이 켜진다. 이 곳은 성욕, 식욕이 충족될 때 행복호르몬이 분비됨으로써 그 행위를 반복하도록 만드는 보상 중추가 있는 곳이다. 음악은 쾌적한 감정을 일으키고 강화하며 불쾌한 감정은 누그러뜨림으로써 보상중추에 직접 작용한다. 우리가 음악 중독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을 알고 익히는 경로는 모국어를 습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음악을 자주 듣다보면 외우지 않아도 음정, 음계, 화음, 조성 등의 복잡한 음악규칙이 어느 정도 내면화되는 것이다.

뇌는 음악에 놀랍도록 빠르게 반응한다. 중요한 기본음이 빠진 채 배음들로만 이뤄진 노래를 들려주면 뇌는 기본음을 알아채고 복원해 완전한 노래를 듣는다. 또한 뇌는 강박적으로 박자를 포착하려고 한다. 처음 듣는 노래일지라도 두세 음만 들으면 몸이 박자에 맞춰 들썩이게 된다.

특히 뇌가 좋아하는 박자는 따로 있다.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간은 2의 배수에 바탕한 4분의 2박자와 4분의 4박자를 가장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리듬은 운동에 관여하는 뇌 구역을 활성화하는데 특히 소뇌에 작용한다. 소뇌는 뇌간과 함께 진화론적으로 가장 오래된 뇌 부위다. 이는 우리의 리듬감이 아주 오래 전에 생겨났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음악이 필요했을까? 다윈은 음악을 구애활동으로 봤다. 남자가 여자에게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음악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엄마가 아기를 달래기 위해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집단활동에서 비롯됐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있다.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억제하면서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안으로 음악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7번 염색체의 유전적 결함 장애를 가진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은 신발끈을 묶는 일이나 단추를 꿰는 일에는 서툴지만 악기 연주는 천재적이다. 놀랍게도 그들의 뛰어난 연주 솜씨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다. 타인과 함께 하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다.

저자의 탐색은 음악을 듣게 되는 소리의 매커니즘부터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와 악기, 한 옥타브 안에서 최대 350개의 음을 구분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파헤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절대음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운 게 많다. 음 하나를 들려주고 알아맞추는 능력은 음악성의 특별한 능력은 아니란 것이다. 특히 절대음감 소유자는 오히려 음악을 들을 때 방해가 될 수 있다. 거의 모든 밴드와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할 때 진동수가 440헤르츠인 ‘표준음 A’를 기준으로 삼는데 오래된 작품을 연주할 때는 반음 낮게 조율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절대음감 소유자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 눈으로는 피아노의 A건반을 보면서 누르는데 Ab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연주는 불가능하다. 이들은 음 이름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멜로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소름을 돋게 하는 궁극의 음악이란 게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런 음악은 없다. 음악이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은 음악 바깥, 즉 사회문화적 상황이나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적 취향이 상대적인 만큼 절대 음악이란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모차르트 효과’도 있지만 ‘슈베르트 효과’도 있고 ‘스티븐 킹’ 효과도 있다. 문제는 어떤 음악이 나에게 기분을 좋게 만들고 각성 수준을 높이느냐다. 이는 아기나 학생, 어른, 노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더욱 놀라운 건 능동적인 음악활동은 뇌의 모습까지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수학시트콤’‘물리학시트콤’으로 유머러스한 책 강의를 펼친 바 있는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특유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로 음악적 인간의 미스터리를 속시원하게 풀어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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