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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수저란 말 싫어요”…헬조선에 뿔난 청춘들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ㆍ경제불황 등에 2030세대들이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낮추고,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신조어가 ‘무력감’, ‘좌절’ 등을 불러 일으킨다며 외려 사용하지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고려대에 따르면 학생들이 익명으로 사연을 올릴 수 있는 학내 SNS 공간인 ‘대나무숲’엔 최근 “나는 ‘흙수저’란 말이 싫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작성한 학생은 “아무도 나에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지 않지만, 우리 부모님이 흙수저란 말은 몰랐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못 배웠으니 너는 열심히 배워 꼭 성공하라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흙수저라는 말을 알게 되면, 본인이 자식에게 흙수저를 준 건 아닌지 생각할까봐 싫다”고 털어놨다. 

흙수저란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금수저’와 반대되는 의미로, 평범한 집에 태어난 무력한 개인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 학생은 “나는 부모님에게 깊게 뿌리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다”며, “부모님의 존재로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고 적었다.

해당 글은 1만4400명이 넘는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널리 공감을 샀다.

한 네티즌은 “우리가 ‘금수저’는 아니라도 ‘흙수저’라는 생각은 가지지 말자”면서,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현실이 그렇다고 한들 바꿀 방법을 찾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고 동조했다.

‘흙수저’, ‘헬조선’ 등 신조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 강모(29ㆍ여) 씨는 “열심히 일해봤자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애들 아래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신조어가 어느 순간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눠놓더라”면서, “다 똑같은 사람인데 계급을 나누는 것도 싫지만, 그 계급이 돈으로 나뉘는 건 정말 천박하게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대학생 박모(23) 씨도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빽’은커녕 물려줄 재산도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흙수저’란 말까지 나오니 뭔가 시도도 하기 전에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헬조선’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취업준비생 권모(27ㆍ여) 씨는 “나도 우리나라가 살기 어렵고 ‘헬조선’이라는 덴 공감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나라 탓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0) 씨도 “흙수저도 그렇고 헬조선도 그렇고, 이런 분노를 원동력 삼아 상황을 바꾸면 좋은데, 괜한 좌절감만 불러오면서 외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런 신조어가 나오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비판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부 청년들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선은 긍정적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헬조선’, ‘흙수저’같은 신조어들이 어려운 사회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분노보다는 그 속에 갇혀있는 자조, 분노 등으로 표출돼 온 만큼, 청년들이 부정적이고 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실이 싫고, 좌절만 한단고 바뀌는 게 아니니, 사회를 무작정 부정하기보단 문제를 고쳐나가는 힘으로 청년들도 힘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모래알같은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로 집단화된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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