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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혜 ‘심청가 완창’…집요한 예술로의 초대
31일 국립극장서 4시간20분 완창판소리
심봉사의 “너를 팔아 눈뜨면 무엇하리” 등 삶의 본질 깨닫는 고전의 깊이 선사



100여년 전 스승 정정렬은 토굴에서 25년 동안 소리를 연마했다. 3대를 거쳐온 제자 정은혜는 프랑스 세느강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그에게 전해받은 소리를 세계인들에게 들려준다. 뉴질랜드에서 온 93세 할머니는 “너무 아름답고 슬픈 음악”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정은혜(31)는 2013년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하자마자 주역을 꿰찬 젊은 소리꾼이다. 국립창극단 입단 전부터 현대 무용가 안은미, 영화 ‘암살’ 음악감독인 장영규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현대무용가, 미술작가, 핀란드 피아니스트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판소리의 매력을 알려온 정은혜가 이번에는 정통 판소리 완창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사진제공=국립극장

재즈 가수 나윤선은 운전하다 라디오에서 정은혜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차를 세웠을 정도다. 올해 나윤선은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정은혜와 핀란드 피아니스트 이로 란탈라의 협연 무대를 기획했다.

미술작가 정은영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전시회에서 정은혜의 소리가 담긴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판소리를 무용,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해왔던 정은혜가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선다. 지난 30년간 중견 명창들이 공력을 뽐내왔던 자리다. 정은혜는 4시간 20분 길이의 ‘심청가’를 완창할 예정이다.

▶30대 소리꾼, 여덟번째 완창 도전=정은혜는 18살때 ‘춘향가’를 시작으로 다섯바탕을 모두 완창했다. 그는 오는 31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여덟번째 완창에 나선다.

정은혜는 최승희 명창으로부터 이어받은 강산제 ‘심청가’를 선보인다. 근대 5대 명창으로 꼽히는 정정렬의 소리는 제자인 김여란 명창-최승희 명창-정은혜로 이어져오고 있다.


“최승희 선생님의 특징이 배어있어 다른 ‘심청가’에 비해 야질자질해요. 섬세하고 수식이 화려하죠. 여기에 제 목소리를 더해 비장함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은혜는 심봉사가 “너를 팔아 눈을 뜨면 무엇하리”라고 하는 대목을 예로 들며 툭툭 와닿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한다.

“심봉사가 곽씨부인에게 ‘우리가 사는대로 살아가되 자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서 이야기가 시작해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원하는 인간의 보편성이 담겨있죠.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고전의 깊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느껴져요”

북을 치는 고수는 두시간마다 교체되지만 소리꾼은 혼자 등장인물들을 연기하고 해설자 역할도 한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다.

“완창을 듣는 관객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서 끝나면 항상 관객들께 큰절을 해요. 원래 판소리는 저잣거리같이 열린 공간에서 했잖아요. 한시간 소리 듣고 나가서 남산 산책하고 다시 소리 들으러 오셔도 되요. 물론 제가 소리를 잘하면 객석에 꼼짝없이 앉아 계실테니 잘 해야죠”

뭐하러 힘들게 완창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리꾼이 한대목을 멋지게 들려줘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정렬 선생님께서는 25년간 독공하셨는데 제가 어찌 그 소리를 따라가겠어요. 그때처럼 연마할 수 없는 여건이니 스스로 채찍질하고 반성하기 위한 것이예요. 최승희 선생님께서는 김명환 고수와 6시간 30분 동안 쉬지않고 ‘춘향가’를 녹음하신 적이 있어요. 세상에 이렇게 집요한 예술이 또 있을까요”

▶장래희망은 세계적인 소리꾼=정은혜는 지난해말 국립창극단에서 독립해 ‘정은혜컴퍼니’를 세웠다.

“남들은 취업이 안 되서 난리인데 ‘정신 나갔냐’는 사람도 있었어요. 편안한 직장에서 주어진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었지만 ‘정체돼 있다’는 위기감도 느꼈죠”

‘정은혜 컴퍼니’의 첫 활동은 올해 파리 여름 축제였다. 정은혜는 2013년 프랑스 파리 여름 축제에 참가해 새벽 6시에 흰 한복을 입고 세느강변에서 소리를 했다. 관객 1000여명이 동이 터오는 새벽에 들려오는 신비한 소리에 빠져들었다. 올해는 판소리와 함께 아시아 민요들을 들려줬다.

“판소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해외 관객들도 한번 들으면 정말 좋아해요. 선입견을 배제하고 알맹이를 보면 더 잘 볼 수 있잖아요. 한국 관객들께서도 판소리를 어렵다고 여기지 말고 더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초등학생이 장래희망을 써 내듯 그는 ‘세계적인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한다.

“지금은 ‘세계를 떠도는 소리꾼’이지만 그것도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안은미, 장영규 선생님과 실험적인 작품을 하면서 판소리가 현대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외국 피아니스트와 협연하면서 판소리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앞으로도 세계 어느 무대에서건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하고 싶어요”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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