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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길을 걸으면서 역사도 만나고 ‘나’를 돌아본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 길을 걸으면서 공간의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올레 길, 둘레 길을 걷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나온 책 ‘골목길 근대사’의 저자 최석호 박사는 “길을 걸으면서 역사를 만난다. 역사인식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역사도 조금 배우고 산책이 주는 재미도 느끼자는 취지다.

도시인들이 걸어다닐 기회가 많지는 않다. ‘앞’만 보면서 달려온 현대인은 걸어봐야 한다. 그래야 ‘옆’도 보이고 ‘뒤’도 보이기 때문이다. 걷는 만큼 보인다.


나라를 넘겨준 ‘을사늑약’ 조약을 체결한 ‘중명전’과 임금이 왕궁을 버리고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친 ‘아관파천’의 현장 러시아공사관 등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남아있는 서울 중구 정동에서 광화문 쪽으로 걷다보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중략)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 노래는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게 변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을 노래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광화문 덕수제과에서 여고생과 미팅하던 고교 시절이 생각나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광화문 사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동을 걷다보면 역사의 영광, 분노, 좌절을 느낄 것이고, 또 그것이 어떤 창조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걸어보는 길은 생존을 넘어 실존의 공간이다. 일을 하는 직장이라는 생존의 공간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실존공간에서는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자아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자기 실존과 만날 수 있다. 각박한 현실을 떠나 환상과 꿈을 떠올리고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곳이다. 현대인에게 길과 걷는 행위는 그래서 소중하다. 이 가을 생존의 공간을 떠나 ‘나’를 채울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걸어봄이 어떨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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