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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민속촌에 ‘꿀알바’는 없다…고단하다 그러나 ‘꿈’이 익는다
코발트블루색을 띤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을 찾았다. 한국민속촌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평일에도 수학여행과 소풍을 온 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재잘대며 뛰어다니는 학생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이 섞여 정신이 없을 정도다. 


요즘 인터넷 상에 ‘한국민속촌 꿀알바’로 유명세를 떨치는 캐릭터 연기자들을 찾았다. 이들을 보기 위해 민속촌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편하고 시급이 높길래 꿀알바로 유명세를 떨치나 궁금했다. 시끌벅적한 곳으로 눈을 돌리니 꽃거지(김정원 /남ㆍ27)가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꽃거지 주위는 이미 학생들과 신기하게 쳐다보는 외국인 관람객들로 붐빈다.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기념사진도 찍고 초등학생들의 짓궂은 장난도 맞받아친다. 거지처럼 편한 자세와 귀찮은 모습으로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관람객들이 떠날 때 쯤 애처로운 표정으로 손을 붙잡으며 한 마디 건넨다. “한푼 줍쇼” 이 대사 한 마디에 관람객들은 꺄르르 넘어가고, 간식이나 동전 심지어는 지폐까지 기분 좋게 동냥 바구니에 넣는다. 꽃거지의 완벽한(?) 연기 탓도 있지만, 편하게 돈을 번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꽃거지 꿀알바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꽃거지는 민속촌 직원이다. 알바가 아니다. 
 
꽃거지는“손님 한푼 줍~쇼”

꽃거지를 지나니 예쁘장한 얼굴의 유생(儒生) 캐릭터 연기자가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인터넷에서 봤다며 싸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요청한다. 유생역을 맡고 있는 캐릭터 알바 이정후씨(여, 21세)는 기생과 구미호 역할로 역시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다. 뮤지컬배우가 꿈인 그녀는 구미호와 기생 역할보다는 남자 유생역이 좋다고 한다. 남자역이라 오히려 남자 관람객들에게 다가가기가 편하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야외에서 연기를 하는 탓에 체력 소모가 많지만 이 일을 맡은 후 건강해졌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일에 행복을 느껴 건강해졌다는 자가진단이다. 그래서 가끔 쉬는 날에도 민속촌에 나와 캐릭터 연기를 한다고 한다. 

유생은“걸그룹 미모쯤이야”

좀 더 들어가니 코믹하게 분장을 한 죄인 캐릭터 연기자가 죄인 의자에 앉아 사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오늘 몇 번 째 주리를 트냐고... 벌써 열 두 번째야~“ 코믹한 대사 한마디가 관람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관람객들이 포졸 캐릭터 연기자와 번갈아 가며 죄인의 주리틀기 체험에 들어간다. 저절로 혼신의 연기가 되는 죄인의 표정과 비명이 안쓰럽다. 꿀알바는 아닌 듯하다. 

죄인은“아악~, 주리는 그만”
 
죄인의 비명을 뒤로 한 채 사또 캐릭터 연기자는 관아의 그늘에 앉아 관람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가끔 역모를 꾀한 죄인의 주리를 틀라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잠시 후 관람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죄인의 비명이 들려온다. 


사또는“자~, 우아하게 한컷”

이런 자연스럽고 친근한 설정들은 민속촌 연기자들과 알바들이 함께 캐릭터에 대해 연구하고 의논해서 나온다. 관람객들이 사극에 같이 참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사극 속의 캐릭터들과 그 시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으니, 관람객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듯 하다. 역시 소문대로 한국민속촌이 많이 달라졌다. 

민속촌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기자들과 캐릭터 알바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알바에 채용된 이들은 각 캐릭터를 연기하며 뮤지컬배우, 연기자, 가수 등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20명중 군 입대와 어학 연수를 제외한 15명이 근무한다. 이 중 사또와 꽃거지는 민속촌 직원이다. 알바의 급여수준은 편의점, 주유소 같은 일반 직군의 시급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밝히진 않았다. 이들이 꿈을 향해 즐기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시급이 얼마에요?” 라고 묻기가 부끄럽다.

‘한국민속촌 꿀알바‘는 없다. 대신 꿈을 찾아 즐기며 연기하는 젊은 에너지가 충만하다. 알바들의 꿈이 깊은 가을처럼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다.

글ㆍ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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