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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신창훈]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집단선택의 함정
2012년 10월이니까 딱 3년이 흘렀다. 내가 일본 게이오대(慶應義塾大) 방문연구원으로 요코하마(浜)에서 생활을 시작한 때다.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였다. 당시 난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두 아이를 일본 공립초등학교에 보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일본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둘째 아들 녀석이 학교 준비물로 리코더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아내와 난 급하게 100엔숍에 가서 리코더를 구입해 학교에 들려 보냈다.

며칠이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이 아이 편으로 편지 한통을 보내왔다. “아이가 리코더를 안 갖고 오니 내일부터는 꼭 준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분명이 가져갔는데….’ 알아보니 아들 녀석이 리코더를 가방 속에 넣어놓고 꺼내지 않았던 거다. 학교에서 돌아온 녀석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반 아이들이 갖고 있는 리코더랑 달라 꺼낼 수가 없었다”고 실토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다른 게 뭐가 문제란 건가. 

내가 녀석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의 공립초등학교 1개 반 학생 수는 35명 정도인데 모든 아이들이 같은 메이커, 같은 색깔의 리코더를 들고 다녔다. 2500엔짜리 야마하 제품.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이에게 사 준 건 100엔짜리 파란색 리코더였다.

아들 녀석도 반 아이 모두가 똑 같은 리코더를 갖고 있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리코더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가뜩이나 말이 안 통해 주눅 들어 있었을 텐데…. 아이의 처지를 이해 못해준 것 같아 미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일본 아이들은 선생님이 뭐라 말하지 않아도 똑 같은 리코더를 사서 들고 다닌다. 행여 옆 친구와 다르면 집단행동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해서다. 아마도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일본 공립초등학교에서 반드시 배우는 리코더 연주는 ‘집단 하모니’의 상징이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같은 색깔 리코더를 불며 집단 속 일체감을 배운다. 

‘집단주의’는 일본이 짧은 시간에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반대로 20년 넘게 성장이 멈춘 나라로 추락한 데도 기여했다고 난 생각한다.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창의성이 발현될 리 없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성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하면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부가 만든 단일 교과서로 한국사를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민 주권에 근거한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내용을 가르쳐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이 국가가 정한 단일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쁜 교과서’가 있다면 검ㆍ인정의 문제가 아닌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학 교수는 “한 사회의 발전은 개인이 누려야 할 ‘선택의 자유’가 넓어짐을 의미한다. 풍요로움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했다. 이유야 어떻든 선택의 자유를 억누르는 사회에 행복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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