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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인사이트-김락곤 KOTRA 오클랜드무역관장]안전에서 시작해 안전으로 맺는 뉴질랜드의 하루
한국과 뉴질랜드 간 비즈니스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뉴질랜드 기관의 요청을 받고 조찬행사에 갔다. 한-뉴 FTA 체결 이후라 한국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예상보다 많은 기업이 참석했다. 주최 측 대표가 인사말을 하기 전에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과 비상탈출구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안전의식이 투철한 분이라며 옆 좌석 사람에게 칭찬했더니 뉴질랜드에서는 이 과정이 주최 측의 법적 의무사항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조찬을 마치고 사무실에 오자마자 화재경보음이 귀를 찔렀다. 무역관 직원 중 한 명이 ‘Warden’이라 쓰인 형광 조끼를 입고 내 방에 들어와 대피하라고 재촉했다. 비상계단은 24층짜리 건물에서 일시에 쏟아져 내려오는 대피 인파로 꽉 찼다. 건물 밖에 나오니 사무실별 대피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Chief Warden’이라고 쓰인 조끼 입은 사람에게 총원과 대피 완료 인원을 보고하고 있었다. 얼마후 도착한 소방차는 출동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기록만 하고 돌아갔다. 


화재 훈련이었다. 그날 건물 입주자들이 대피하기까지 12분, 소방차가 도착하기까지 4분이 소요됐다. 조끼 입은 직원은 예고 없는 화재 대피 훈련이 1년에 4~5차례 있으며 본인은 화재 대응뿐만 아니라 응급 구조 CPR 교육도 받는 등 사무실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관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했다.

사무실로 올라와 옷만 챙겨 입고 남반구 최대 농업 전시회 한국관 장치를 점검하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축구장 60개 면적과 맞먹는 야외 전시장인 만큼 들어가기 전 안전교육 이수가 의무사항이라고 한다. 전시장 내 회의실에서 30분간 안전교육을 받고 안전 조끼를 착용한 후에야 교육을 받았다는 팔찌를 차고 입장할 수 있었다. 참가업체 분들도 이렇게 엄격한 안전관리는 처음이라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오후에는 회의 참석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보딩패스를 받고 입구로 향하던 중 평소 안면이 있던 기업인을 만났다. 호주 출장에서 막 돌아오는 길인데 떠나기 전 배낭에 무심코 넣어 두고 잊어버린 사과 한 알을 신고하지 않아 입국 검역관으로부터 400달러 벌금이 부과받았다며 투덜거렸다. 지구 상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남은 뉴질랜드를 지키기 위한 검역 당국의 엄격한 안전관리를 익히 들어 알기에 내 짐도 다시 챙겨보리라 다짐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 자리를 잡으니 곧바로 기내 안전 수칙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럭비 월드컵을 앞두고 뉴질랜드 럭비팀 ‘올블랙’ 선수들을 내세워 ‘맨 인 블랙’이라는 타이틀로 마치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기내안전 동영상이 상영된다. 뉴질랜드 항공은 안전에 대한 승객들의 관심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흥미로운 영상 제작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옆자리 승객은 얼마 전까지는 ‘반지의 제왕’을 모티브로 한 동영상이 상영됐었다고 했다.

신문을 펼치니 최근 비행기에서 강제로 쫓겨난 뉴질랜드 부동산 재벌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승무원이 비상구 옆 창가 좌석에 앉은 승객의 의무를 설명했으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기내 안전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면 좌석을 변경하라는 권유마저 뿌리치자 기장의 명령으로 강제로 퇴출했다는 내용이다. 안전벨트를 메라는 스튜어디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크게 대답했다.

퇴근길에 돌고래호 사건 시신이 추가로 인양됐다는 국내 인터넷 뉴스를 접하며,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안전사고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짧은 하루 동안 생활 곳곳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은 ‘안전’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 속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위해 흥미로운 교육과 엄격한 적용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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