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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작가는 왜 쓰는가, 김훈과 배수아의 산문
[헤럴드경제] “밤에 글을 쓰기 위해 일어나 켜놓은 집안의 불빛을 보았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나요?”“내게는 두가지 목표가 있다오. 하나는 열심히 일하면서 내 심장을 자극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글을 써서 내 영혼을 밝히는 것이오”

제임스 A.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에서 어느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충동 이는 어떤 것에 이끌려 연필을 쥐거나 타자기를 두드리지 않을 수 없는 ‘글 중독자‘랄 작가가 사는 방식이 보인다. 독특한 개성과 사유, 글쓰기로 독자를 이끌어온 소설가 김훈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와 배수아의 여행에세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난다)은 스스로의 내면과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는 몸짓으로 소통한다. 


■사물과 직접 마주하기=김훈의 산문에는 명문으로 꼽히는 것들이 많다. 말을 오래 고르고 다듬고 닦아 언어의 집을 짓기 때문이다.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집은 단단하고 견고하다. 밀도 높은 글 한줄 한줄은 드러내지 않은 숨은 말과 이미지로 두터워 건너가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는 고작(?) 라면 끓이기 레시피를 들려주는 데도 한국의 라면사를 꿰뚫어내고야 만다.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의 표제작 ‘라면을 끓이며’는 라면 예찬은 아니다. 그렇다고 서글픈 삶의 비애의 대상으로 보는 건 지나치다. 작가는 한국에서 1년에 소비하는 36억개의 라면에서 한국인들의 소외된 삶을 읽어낸다. 일상 속에서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규격화돼 대량생산되는 라면시장의 팽창은 라면을 소비해줄 든든한 인구집단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60여종의 첨가물로 만들어진 이 기계적인 음식은 특히나 거리에서 하루를 견뎌내는 이들의 주식이 된다. 작가는 라면이 1963년 처음 나왔을 때 신기루같던 충격부터 별식으로의 대접, 주식의 반열에 오른 과정을 경험에 비춰 들려주며 또 다른 서민의 음식인 짜장, 짬뽕의 가격변화까지 세심하게 챙겨 비교를 잊지 않는다. 그런 뒤, 라면을 그나마 인간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그만의 3분 레시피가 공개된다. 물 4컵과 센불이 기본 조리 조건. 국물 맛내기는 대파로, 분말스프를 보조로 삼는게 이채롭다. 대파는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고 분말스프는 3분의2만 넣는다. 파가 우러난 국물과 질감이 라면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달걀의 타이밍은 불을 끄고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 한번 휘 저어 닫고 30초쯤 기다렸다 먹으면 된다,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는 게 작가의 소개다.

표제작 ‘라면을 끓이며’는 밥, 돈, 몸, 길, 글 등 다섯 개 주제 중 밥의 첫번째 글이다. 다섯 개의 주제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인간의 조건. 이 산문집은 이전에 출간된 ’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작가가 골라 뽑은 산문과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 가량을 합쳐 엮었다.

여기에는 ‘조국의 배신’으로 분노의 삶을 살다간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동해와 서해의 섬에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목수와 어부의 몸 노동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과 진부한 일상이 주는 삶의 신비와 행복, 죽음을 바라보는 일 등 작가의 오랜 생각과 근자의 변화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내가 지금 그 곳으로 가는 이유는 오직 거기에 갈잔이 있기 때문이라고.”

배수아의 알타이 여행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갈잔이 독일어로 ‘귀향’이라는 작품을 쓴 몽골 작가이자 몽골의 사라져가는 부족 투바의 추장이라는 얘기에 독자는 금세 작가의 여행길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서두에 먼저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라고 발을 뺀다.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작가 특유의 사유적이고 긴 호흡의 문체가 여행기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랄까.

갈잔 치낙이 알타이에서 여는 3주간의 프로그램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참여한 작가의 알타이 초원에서의 체류는 모험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과 산과 호수, 척박한 황야와 바람을 종일 바라보고 느끼는 것으로 채워진다. 다른 여행객들이 나름대로 양을 도살하거나 마모트 사냥이라든지 가죽을 무두질하는 일, 양 젖짜기, 난로에 불피우기, 야외에서 별을 보며 잠들기 등 소위 체험 여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그는 한 번도 이런 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그가 한 일은 추위에 떨면서 유르테에 불을 피울 야크똥을 모으는 게 그나마 몸을 움직거리는 정도다.

황야의 유목민의 삶은 자연의 원초적 질료를 강렬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먹어도 가시지 않는 물에 대한 갈증과 신성한 불, 고통스런 추위와 한낮의 따가운 태양, 거침없이 몰아치는 ‘분노의 바람’ 등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작가는 자연과 몸의 경계를 서서히 잊게 된다. 도시에서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무겁던 자아가 한결 자연스럽고 가벼워진 건 이 이상한 여행의 뜻밖의 선물이라 해야 할 듯하다.

어느 날 즉흥적으로 유르테 밖 탐색에 어렵게 나선 그는 검은 호수 아일을 찾아간다. 산책이라지만 아늑한 느낌은 없다. ”즉흥적으로 길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곧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주 많이 걸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주변의 풍경과 원근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전혀 변하지“ 않는 주위 풍경에 혼란이 생긴다. 그리하여 절대적으로 혼자임이 유발하는 자연의 고독이 덮친다. 작가는 이를 ‘물질적인 고독’이라고 했다.

채식주의자로서 유목민 여행에 나선 건 얼핏 무모해보인다. 양고기를 먹지 못해 지쳐가는 3주간의 나날, 먹고 자고 싸고 씻는 살아가는 일의 기초적인 문제의 어려움은 몸을 예민하게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쉽게 취약하게 만든다. 감기와 고지대병 등으로 한바탕 앓고 난 여행의 막바지, 말을 타고 떠난 골짜기 여행은 일종의 적응력이라 해야 할까. 검은 색의 긴머리, 치렁치렁한 양털 스커트를 입고 손에 땔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일행에게 영락없는 유목민 여인으로 비쳐진다. 작가는 그 유목민 여인을 제목에다 붙였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은 3주간의 통과 의례를 거친 작가의 고백으로 읽힌다.


라면을 끓이며/김훈 지음/문학동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배수아 지음/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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