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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력서에 아빠직업ㆍ가족사항 쓰기 싫어요!”
“평범한 가정환경, 꾸며쓸 만한 거 있을까요?” 
“아빠가 판사인데, 자소서에 써도 될까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추석명절이 끝나면 본격적인 ‘자소서(자기소개서)의 계절’이 돌아온다. 본격적인 취업 시즌과 로스쿨ㆍ의치전 등 전문대학원 원서 접수가 시작되면서 지원자들 앞에는 채워야 할 자소서 항목들이 산더미다.
기업의 전략을 묻는 고차원적 문항도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성장과정’이나 ‘가족사항’ 문항에서 난감함을 표시하는 지원자들이 적잖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하반기 공채 취업준비생 7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쓰기 싫은 이력서 항목’을 묻는 질문에 ‘가족사항’을 선택한 사람이 360명(21.6%ㆍ중복응답 가능)으로 가장 많았다.

이유로는 ‘입사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개인 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 같아서’, ‘필터링의 기준이 될 것 같아서’ 순이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이 자산총액 30대 기업 중 28곳의 입사원서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부모 등 가족사항을 물은 곳이 두산그룹과 신세계그룹 등 13곳(45.4%)이나 됐다. 한국철도공사와 LS 등 5곳(17.9%)은 결혼 여부도 물었다.

못 가진 ‘부모 스펙’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지원자들은 평범한 가정환경을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고충을 토로했다.

취준생 A(27)씨는 “작은 가게를 하시는 아버지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소서에 쓸 만큼 이야기가 되는 가정환경이 없었다”라며 “눈길을 잡아끄는 자소서를 써야겠단 생각에 아버지 직업을 중소기업체 사장으로 꾸며 썼지만 지원과정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리한’ 부모 스펙을 가진 지원자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부모 직업이나 살아온 환경 등을 어떻게 ‘노출’시켜야 자신에게 유리할지 이리저리 재고 있기 때문이다.

‘순혈주의’ 논란이 빚어진 로스쿨에서 이같은 모습이 두드러진다.

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버지가 판사여서 자연스럽게 법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로스쿨 자소서 ‘성장환경’ 문항에 써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이 간혹 등장한다.

지원자들 사이에선 부모님이 판검사라면 최대한 ‘거들먹거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절히 활용하라는 조언이 우세하다.

“부럽습니다”, “벌써 아버지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을까요?” 하는 질투어린 반응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혼란은 한국 사회 연고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대판 음서제’를 젊은 지원자들도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냥 별 뜻 없이 관행적으로 부모나 가정환경을 묻는 문항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특혜나 불공정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런 문항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며 “기업과 학교가 나서서 연고주의를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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