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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 안 남긴다”…위험천만 불법 낙태의 그늘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바로 낙태 수술 가능한 병원 소개 해 드릴게요. 4시간만 금식하고 오시면 바로 수술 가능합니다.”

매우 제한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최대 17만건으로 추정되는 낙태 수술의 대부분은 음지에서 이뤄진다.

그만큼 관리가 허술해 의료사고 위험이 높다. 특히 일부 병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불법으로 낙태 수술을 해주고 있어 의료사고 우려는 한층 더 증폭되고 있다. 

기자가 온라인상에서 ‘빠른 낙태 상담 해 드립니다’라는 게시물을 보고 문의 메일을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이어진 통화에서 자신을 ‘정식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실장이라고 밝힌 여성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을 소개했다.

상담 후 4시간만 금식하면 당장 오늘 내일이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나이도 구두로만 확인해 미성년자인지 확인하는 절차도 형식적이었다.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고혈압ㆍ당뇨 등 지병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없다’고 대답하면 끝이었다.

자세한 절차를 묻자, 간단한 검사 후 10~20분정도 본 수술을 받고 1시간 정도 수액을 맞으면서 회복 시간을 거치면 즉시 퇴원이 가능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비용은 임신 주수에 따라 50만~70만원 선이며 간단한 차트만 작성할 뿐 기록은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실장은 “아시다시피 불법이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도 않고 남겨서도 안 된다”며 “그래서 현금만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을 구입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인터넷으로 판매 사이트를 찾아 이곳에 적혀있는 ‘카톡’ 아이디(ID)로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전화상담이 이뤄졌다.

역시 마찬가지로 임신 주차와 나이 등 간단한 정보만 묻고서 입금이 확인되면 배송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사흘 간 복용하는 9개 알약 세트가 35만 원. 상담원은 “자연유산과 같은 효과가 난다”며 “낙태 안 되는 경우는 없고, 수술보다 안전하고, 부작용과 후유증도 전혀 없다”고 약의 효과를 자신했다.

이처럼 낙태수술이나 약품에 대한 접근이 쉬운 환경은 곧바로 임신부에 대한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 한국에서 유학중이던 중국인 오모(25ㆍ여) 씨는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받다 뇌사에 빠졌다.

병원측은 아주 기초적인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도 없이 수술을 강행했고 오씨가 약물에 이상증세를 보였지만 대형병원으로 이동시키지도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오씨는 다니던 대학 주변 산부인과들을 몇 군데 다녀보며 낙태 수술을 쉽게 알아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음성적으로 수술이 행해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해야하는 간단한 검사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말고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낙태라고 검색하면 수십 수백개 광고가 뜨는 인터넷 환경을 억제하기 위해 모니터링 강화에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연간 낙태 추정 건수는 16만8738건이었다.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를 나타내는 인공임신중절률은 15.8건. 낙태 사유로는 대부분이 모자보건법상 허용되지 않는 ‘원치 않는 임신(50.7%)‘, ’미혼(26.2%)’, ‘경제적으로 양육이 어려움(17.9%)’, ‘가족계획(12.9%)’, ‘사회활동 지장(8.5%)’ 등이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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