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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와 조각, 하나의 뿌리를 가진듯…추사 김정희·우성 김종영을 만나다
학고재갤러리, 10월 14일까지 전시


“(중략) 복인(服人ㆍ상중에 있는 나)은 망극한 천은으로, 근래 노친께서 특별히 석방되는 혜택을 입어 온 식구들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한 자리에 모여 기뻐해마지 않고 있으니, 산처럼 큰 은혜와 바다처럼 넓은 덕택 앞에 오직 하늘에 빌고 성상께 빌 뿐입니다. 주변에서도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 이루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사년(1833) 9월 19일에 복인 올림. 

추사 김정희(왼쪽)와 우성 김종영의 자화상. 전시장에는 선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추사의 자화상이 걸릴 예정이다. [사진제공=학고재]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눌인(訥人) 조광진(1772-1840)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편지 한 장에서도 서체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 ‘산처럼 큰 은혜와 바다처럼 넓은 덕택 앞에(恩山德海之中)’를 쓸 때에 추사의 글씨는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인다. 이동국 예술의 전당 서예부장은 “추사의 부친(김노경ㆍ1766~1840)이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것에 기뻐하는 마음이 글씨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며 “추사는 매사에 비분강개하는 성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 19세기 최고의 문인 추사 김정희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가 학고재갤러리(서울 종로구 삼청로)에서 열렸다. 추사의 서예와 함께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의 조각 작품이 어우러졌다. 올해가 김종영 탄생 100주년이라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학고재갤러리의 가을 첫 전시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은 ‘옛 것을 배워 새 것을 창조한다’는 뜻을 가진 학고재의 이념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장에는 추사의 서예 25점과 우성의 조각 35점이 나와 있다. 추사의 서예는 추사체가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제주 유배시절의 작품들로, 대부분 개인 소장품이다. 이 중 가로 9m짜리 서첩도 있다. 전시는 서예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가 마치 하나의 뿌리를 가진 듯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자호삼매지실(紫壺三昧之室)’ 등 우성이 쓴 서예 작품도 걸려 있어, 전시장 공간은 추사와 우성이 장르와 시공을 초월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분위기다.

김종영은 생전에 추사를 존경해 작품 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생에 조상들 앞에서도 절을 해 본 적이 없는 그가 예산 추사 고택에 가서는 그 영장 앞에서 절을 할 정도였다고.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 전한 일화다.

이동국 부장은 “일제 강점기 억압과 말살 정책으로 한국 미술이 단절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다”며 “용광로처럼 각체(各體ㆍ모든 글씨체)를 혼융(混融ㆍ녹여냄)하고 그 안에서 탁월한 조형미를 구축한 추사는 전통미술의 끝이 아닌 현대미술, 추상미술의 시작점이었으며, 추사체는 우성의 추상조각으로 계승됐다”고 해석했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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