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밤잠도 자지 않고 계속된 남북한간 고위급 접촉이 25일 새벽 극적으로 타결됐다. 북한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 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지시로 내려진 준 전시상태를 해제키로 했다. 대신 우리측은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25일 정오를 기해 중단한다는 게 남북이 합의한 공동 보도문의 요지다. 이로써 북한의 지뢰 도발로 남북이 군사충돌 진적까지 치달았던 급박한 상황에선 일단 벗어나게 됐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다양한 민간교류 활성화를 공동 보도문에 명시한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다만 ‘사과’와 ‘재발 방지’를 못박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협상에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그만하면 남북 모두 최선을 다한 협상이라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판을 깨지 않고 끝까지 협상에 임한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더욱이 북한은 협상 대표로 권력 서열 2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내보냈다. 그만큼 이번 접촉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했다는 뜻이다. 북한이 전에 없이 진지한 자세로 나온 것은 상대적으로 원칙을 절대 고수한다는 우리의 의지가 단호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뢰 도발 초기부터 일관된 대북 대응 원칙을 견지했다. 북한이 포격 도발을 감행하고 준 전시상태를 선포해도 이 원칙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직접 주재하며 ‘단호한 대응’을 거듭 지시했다. 이런 원칙이 결국 북한을 압박했던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서도 국민들의 의연한 태도는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됐다. 이번 지뢰 사태가 발발하자 북한은 사실을 부인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남 갈등 유발을 획책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재기 등 어떠한 동요도 없었고, 일상은 아무일 없는 듯 평온했다. 오히려 일부 장병들은 어려운 상황을 동료와 함께 하겠다며 전역을 늦추고, 휴가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조기 귀대하는 등 더 결속된 모습을 보였다.

남북 군사 안보 실세들이 머리를 맞대고 위기 국면을 해소한 것은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추가적인 군사 도발을 중지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남북이 합의한 내용에는 ‘재발 방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성급하게 군사적 긴장을 푸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접촉이 어느 때보다 유연했다는 것은 좋은 선례로 남아야 한다. 이는 남북 지도자들의 대승적 결단으로 이어져 꽉 막힌 남북간 통로를 활짝 열어가는 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