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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정덕현] ‘베테랑’과‘용팔이’우리에게 재벌이란
한때 대중들에게는 재벌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늘 신데렐라들이 탄생하곤 했다. 막대한 부를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기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거머쥔 재벌2세들은 가진 것 없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의 딸들을 구원해주는 왕자님이었다. 하지만 이게 다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대중들의 눈에 비친 재벌2세란 동경보다는 공분을 일으키는 존재다. 

1천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 <베테랑>의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는 딱 그런 인물이다. 안하무인에 돈이면 뭐든 다 해결된다고 믿는 자. 1인 시위하는 배기사(정웅인)를 사무실로 끌고 가 흠씬 두들겨 패고는 이른바 맷값으로 수표를 쥐어주는 비뚤어진 재벌3세의 모습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과 조우하는 면이 많다. 맷값 폭행이니 회장님의 보복 폭행 같은 사건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신문지상을 통해 본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 유명한 ‘땅콩 회항’ 사건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로 타전되어 국제적인 망신살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드라마 <용팔이>에서도 재벌가가 그려지는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의학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VIP 병동은 한 마디로 말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조차 돈에 의해 나누어지는 서열사회를 보여준다. 일반병동에 환자가 있다면 이 VIP 병동에는 고객들이 있다. 돈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재벌2세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본인이 상해를 입히고도 이 병동에 전화 한 방이면 의사가 직접 왕진을 와 깨끗하게 정황을 조작해버릴 정도다.

용팔이(용한 돌팔이라는 뜻)라는 닉네임을 가진 김태현(주원) 역시 돈과 힘이 없어 자신의 인턴시절 눈앞에서 죽어가는 엄마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환자를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 운운하는 선배 의사의 말은 그에게는 너무 순진한 이야기가 된다. 생명 앞에서조차 돈이 우선되는 현실 속에서 용팔이 같은 결코 순진하진 않지만 그래도 환자를 버리지 못하는 의사가 소영웅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건 그 대척점에 VIP병동으로 상징되는 재벌가에 대한 공분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재벌가의 회장님이나 2세들이 이토록 비윤리적이고 이타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자본의 기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재벌2세들이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고,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마치 이들을 ‘공공의 적’처럼 그려내고 있다는 건 지금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거에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버는 부자에 대해 그래도 어떤 선망의 시선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에 대해 따지게 되었다. 대중들은 이제 저들이 취한 부의 축적이 누군가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돈만 많이 번다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이렇게 이윤추구만을 하는 회사는 이제 더더욱 돈 벌기가 어려워진 ‘대중의 시대’, ‘소비자의 시대’가 점점 열리고 있다. 기업의 공공성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 시대에 지난 구악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돈의 횡포는 그래서 점점 더 공분의 대상이 된다. <베테랑>과 <용팔이>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정서에는 이러한 기업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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