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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하늘농사’로 거둔 고추와 수박
“고추농사는 (농)약 안치면 안 되는데 정말 놀랍네요.”

“수박농사는 비료를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신기하네요.”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6년째 농사를 지어오면서 필자가 들어본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것도 10~20년 농사경력을 지닌 베테랑 농부들의 감탄사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올해는 주력 작물에 매년 쭉 지어오던 감자, 옥수수, 고구마와 함께 고추, 수박과 참외를 더했다. 매년 소량의 풋고추 농사는 지어왔지만, 올해는 고춧가루를 자급하기 위해 면적을 제법 늘렸다. 또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수박은 두 번째, 참외는 세 번째 도전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고추는 약 안치면 안 되고, 수박은 비료 안주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터라 더 더욱 그랬다. 그래도 6년 째 지켜온 ‘無농약·無화학비료’의 원칙을 깨뜨릴 순 없었다. 되는대로 거두고자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전에는 고작 주먹만 하던 수박이 마법처럼 쑥쑥 커지더니 시장에서 파는 것 못지않은 ‘대물(물론 일부지만)’로 변신하는 것이 아닌가!

고추도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렸다. 결실을 앞두고 일부 탄저병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아 현미식초와 매실액을 물에 섞어 세 차례 방제했지만, 농약은 단 한 방울도 뿌리지 않았다. 이후 빨갛게 익은 고추를 벌써 여섯 차례 거두어 당초 목표했던 고춧가루 자급물량은 이미 초과 확보했다.

호들갑스럽게 고추와 수박농사 자랑을 했지만, 고백하건데 필자의 농사는 규모와 생산량에서 결코 내세울만한 수준이 못 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많이 거두겠다는 욕심을 비우고 먼저 땅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사를 지었다. 올해 고추와 수박농사의 성공은 바로 이런 노력에 대한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최근 몇몇 50대 부부들이 필자의 집을 찾아왔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인생1막을 살아온 이들은 모두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갈망했다. 더불어 자급자족형 친환경 농사를 통해 건강한 인생2막의 삶을 영위하길 소망했다. 한 마디로 ‘힐링 전원생활’이다. 얘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모두 암 등 생사를 넘나들었던 투병의 경험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친환경 농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비슷한 사정으로 이미 시골에 들어와 있는 이들 조차도 실제로 짓는 농사와 그들이 추구하는 힐링 전원생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개 땅을 먼저 살리기 보다는 수확에 욕심을 낸다. 그 결과 친환경 자급농사를 짓겠다는 초심은 흔들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약과 화학비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진정한 친환경 농사란 자연을 믿고, (내가 아니라) 자연이 지어주는 농사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만족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하늘농사다.

전원생활을 두고 느림의 미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농사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내어 서두르지 말고 먼저 땅을 살리는 하늘농법을 실천할 때 비로소 느림의 미학은 내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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