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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벼랑끝 롯데, ‘重光(시게미츠)’와 ‘신(辛)’사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ㆍ성연진ㆍ윤현종 기자] ‘원 글로벌 롯데(One Global Lotte)’.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같다. 한 명의 리더가 한국과 일본의 롯데를 총괄하는 것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당초 회사를 쪼개서 물려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경영을 잘하는 원톱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분은 장남과 차남에게 고루 나눠줬다. 둘의 지분 차이는 1% 내외, 숫자만 봐서는 누가 후계자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연년생인 아들 둘의 경쟁을 관전토록 한 것은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광윤사와 일본롯데홀딩스의 우리사주였다. 이 두 회사의 지분 구조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은 “우리사주를 통해 종업원들이 후계자를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선의의 경쟁 후 평화로운 계승을 예상했겠지만, 창업주의 바람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롯데가의 물고 뜯음은 갈 데까지 갔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은 폭로 수위를 높이며 언론 플레이에 나섰고,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과 일본 경영진의 지지를 끌어내며 반격했다. 이 가운데는 ‘상왕의 남자’로 불린 이인원 한국 롯데쇼핑 부회장과 신 총괄회장이 직접 영입한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도 포함돼있다. 한국 롯데그룹의 37개 계열사 사장단은 3부자의 5분 회동 다음날인 4일 “신동빈 회장 지지” 성명서를 냈다. 롯데그룹 노조도 ‘신동빈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종업원들이 후계자를 선택하도록 하겠다’던 신 총괄회장의 평소 언행에 따르면, 롯데그룹을 이끌 원톱은 정해진 듯하다.

그러나 롯데의 위기는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복잡한 지분구조가 드러나면서, ‘과연 롯데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누구의 주머니로 가는가’는 문제제기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신동빈 회장이 귀국 직후 직접 밝혔듯 한국에서 95%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이, 고작 5%의 매출을 담당하는 일본 법인에 지배되는 기형적 구조는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광윤사라는 곳이 종업원 3명의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은 의혹을 키운다. 한국 롯데의 지배회사격인 호텔 롯데의 지분 73% 가량을 보유한 일본 L투자회사 11곳도 논란이다. 이 중 한 곳의 주소지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도쿄 시부야 자택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 일본 언론은 한국 롯데를 일본에 본사를 둔 일본롯데홀딩스의 해외진출 기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에서 매출이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느냐와 관계없이 일본에서 파악한 롯데는 ‘일본 그룹’이라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일본 롯데홀딩스 연결 실적 공시를 다룬 기사에서 “롯데그룹의 2014년 매출액은 6조5000억엔으로, 일본에 본사를 둔 비상장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선 “롯데 홀딩스(도쿄 신주쿠 소재)가 전체 계열의 지주 회사 역할을 하며, 일본 회계 기준에 따라 연결 대상은 202개, 상장 기업은 한국의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등 9개사”라고 덧붙였다. 


이들 롯데홀딩스와 일본 롯데 계열사가 지난 3년동안 한국 롯데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배당만도 1400억원이 넘는다.

한ㆍ일 두 나라에 걸친 복잡한 순환출자구조에 팔을 걷은 이는 불매 운동에 나선 소비자만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도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롯데그룹을 겨냥해 해외법인까지 상호출자 규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롯데 오너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은 쉽게 마무리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종업원들의 지지와 매출 규모를 감안하면 아우의 우위가 점쳐지고 있다. 게다가 신동빈 회장은 이번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직후, 사실상 한국 롯데의 지배구조 최정점에 선 L투자회사에 대표이사로 등재하며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롯데 장악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가 신동빈 회장의뺨을 때렸다”는 등 집안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롯데가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쉽게 마무리될지 의문이다.

때문에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두 부자 간의 갈등 봉합이 롯데가를 둘러싼 논쟁을 풀어낼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두 부자가 고수했던 경영방식의 세대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1면 표 참조)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일으킨 신 총괄회장은 ‘일본식 보수적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껌 한통의 가격도 자신이 챙길 정도로 ‘작은 것’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집무실에는 화려한 포장을 멀리하고 실익을 추구한다는 뜻의 ‘거화취실(去華就實)’이란 문구가 걸려있다. 


게다가 그는 시장 투자보다는 현물 투자를 즐기는 이다. 1988년 엔화가 배로 폭등하면서 신 총괄회장이 세계 4위 부호 자리에 꼽히자 포브스는 그를 ‘부동산 개발 업자’로 소개할 정도였다. 당시 신 총괄회장의 별명은 ‘600만평의 사나이’ 였다. 일본 동경과 서울 명동, 부산 등에 600만평의 땅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미국 컬럼비아 경영전문대학원(MBA)를 나와 1981년 노무라 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노무라에 입사한 당시는, 엔고를 등에 업은 일본인들이 해외의 주식과 채권, 부동산 쇼핑에 나섰던 때였다. 노무라는 이에 첨병 역할을 하면서 유럽 채권 발행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 투자자로 경영수업을 시작한 셈이다.

2006년 롯데쇼핑 기업공개를 앞두고 “회사를 꼭 팔아야겠냐”는 아버지를 설득시킨 것도 그였다. 현금이 넉넉했지만, 런던과 서울에서 동시 상장을 통해 3조500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한 신동빈 회장은 이후 수많은 기업의 문패를 ‘롯데’로 바꿨다. 올해만 해도 KT 렌탈을 비롯해 러시아ㆍ인도네시아 복합 쇼핑몰 인수 등에 쓰일 기업투자자금으로 사상 최대규모인 7조5000억원을 책정했다.

지분 차이가 나지 않는 3부자의 상반된 경영철학은 얼마나 우호세력을 많이 확보하는가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형제는 신동빈 회장이 자산 15억 달러(포브스 기준), 신동주 전 부회장이 13억 달러로 롯데그룹의 지분 평가규모가 비슷하다. 누가 승자가 되든, 각자의 편에 섰던 롯데가 사람들이 많은 상처를 입을 것은 분명하고, ‘롯데’란 브랜드명의 훼손도 예상되고 있다. 이미 기업 이미지는 3부자의 다툼으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된 직후인 지난달 17일부터 지난 4일까지 롯데그룹 관련 8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1조45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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