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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증세의 충분조건
-허용석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 


11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메르스 영향에 따른 소비 위축과 투자 부진, 수출 저조로 성장률이 연초 예상한 3.8%는커녕 2%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선조치다. 내용을 보면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한 부분이 5조 400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부족한 세수를 보전하는 방법을 두고 정치권은 이번에도 입창차를 드러냈다. 야당은 법인세율 등을 올려 근본적으로 대처해 나가자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은 증세의 부작용을 우려해 다소 여유 있어 보이는 국채를 발행하자는 입장이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인은 세금에 대한 인식이 유독 부정적이다. 시간이 흐르며 나아지는 구석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아직 인식의 차이가 크다. 지난 2001년 이래 여러 차례 세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을 모니터해 온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세금을 왜 내기 싫은가’ 물었다.

세금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다소 바보스런 이 질문에 4가지 응답이 나왔다. 가장 많은 응답이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낭비되기 때문에’였다. 여기에는 세금을 자기 돈처럼 아끼지 않는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담겨 있다.세금을 내기 싫은 첫째 이유가 징수하는 과정에 있지 않고 사용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은 정치권과 정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다음은 ‘탈세가 적지 않은데 정직하게 세금 내는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응답이다. 평등의식이 강해서 그런지 남이 탈세하면 나도 탈세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다음으로 ‘세 부담이 능력에 비해 많다’,‘세금을 많이 내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가 뒤를 이었다.

조세의 제1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금의 공평성은 어떤가. 국민의 55%가 세금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절반을 웃돈다. 2008년 이후 세 차례의 조사에서 큰 변화가 없다. 세금이 소득수준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10% 정도다. 60~65%의 국민이 세금이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고 여긴다. 세금이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을 배려한다고 느끼는 국민은 5~8%에 불과하다. 중산·서민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세법을 개정하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고무적인 부분도 있는데 내는 세금에 비해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더 크거나 적당하다는 응답이 2008년에 27%에서 2012년에 53%로 높아졌다.국민 전체를 100으로 보았을 때 40은 세금을 기꺼운 마음으로 납부하지만 60은 어쩔 수 없이 내거나 빼앗기는 기분으로 낸다. 최근 10년 동안 세금을 기꺼이 낸다는 국민 비중이 35%에서 48%로 늘었다. 반면 빼앗기는 심정이라는 국민 역시 17%에서 29%로 늘어났다. 세금에 대한 인식도 양 극단으로 흐르는 셈이다.

정부가 그동안 세금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국민의 생각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우리 재정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출 예산의 구조조정, 즉 지출 축소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소식이 없다. 경제 성장과 맞물려 있는 세수의 미래 역시 불안하다. 국가채무 규모는 계획보다 늘어만 간다. 재정이 어렵다는 건 증세할 이유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필요조건이 충족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문제는 국민의 공감(共感)을 얻는 일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겠지만 세금은 특히 더 하다.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간파했다.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친이 죽은 쪽을 더 많이 잊는 법’이라고! 정치권과 정부는 증세를 얘기하기 전에 세금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읽고 부족한 부분부터 먼저 메워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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