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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드로 본 광복 70년 한국인의 삶

경제성장, 고도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등 해방 이후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삶은 끊임없는 변화속에 있다. 빠른 성장과 변화에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로 파악하는 시각도 많다. 지난 70년의 의미를 되돌아 보고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광복70년 기념 학술대회(6,7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복 70년,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을 통해 키워드로 살펴봤다.

▶다이내믹 코리아=한국현대사가 성취한 역동적 변화는 모든 국가가 추구했던 보편가치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한국사회의 역동성이 70년 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상이한 가치지향이 동시적으로 발전함으로써 긴장과 동력이 창출되는 기제가 형성된 데 있다. 탈식민화를 위한 두 과제로 ‘개방과 자주’, 동원과 사회유동성의 양면으로서 ‘동원과 참여’, 이동기회와 중산층 사회를 읽는 ‘평등과 차별’, 한국형 퍼스낼러티의 이중성으로서 ‘순응과 일탈’등의 내적긴장이 변증법적 역동성을 창출해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특히 97년 이후 이질적 가치지향의 대립과 긴장이 심화되고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고 이런 흐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역동성을 지속시켜준 내면의 긴장, 갈등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전반의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문화적 기제가 앞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긴장의 공간이 소멸되거나 약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양면적 가치가 함께 존중되고 보호되는 것이 중요하다.(박명규 교수ㆍ서울대)


▶농지=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시절 토지(실제로는 농지)는 그 자체의 생산성이 가장 중요했지만,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토질보다는 위치가 더 중요한 자산이 됐다.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농촌 소외는 더 가속화되었는데, 이는 지가격차를 확대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본이득을 노린 부동산투자는 ‘내 집 마련’을 향한 국민의 절약의지와 연결되면서 지가상승률을 높였으며, 고도성장이 이를 지탱해주면서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다.1980년대의 경우 소득과 자산 불평등도의 추이가 다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저호황과 그에 따른 실질소득의 급증은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에 충분했지만, 그것이 토지소유에 대한 진입장벽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규모는 아니었다. 이러한 자산불평등의 심화는 성장세가 둔화되는 국면에 도달하면 더욱 가속화될 운명이었다. IMF 이후 이는 현실화됐다. 고도성장기와 같은 선순환구조는 자동적으로는 달성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조석곤 교수ㆍ상지대)

▶아파트= 1950~60년대의 구호차원의 주택이 공급정책, 60년대 종전의 사회후생적인 입장에서 경제적 파급효과를 노리는 경제적인 입장으로의 정책전환이었다면, 70년대는 민간주도의 주택공급 시기다. 1980년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로 상징되는 시기로 정부가 주택시장에 강력히 개입해 공공주택을 양적으로 확대했다. 1990년대는 수도권 비대화로 대도시 인구와 기능분산을 위해 신도시 및 신시가지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고 2000년대는 공동주택, 아파트의 시대로 규정된다. 1975년 전체 주택의 93%의 주택이 단독주택이었지만 2010년에 이르면 그 비율은 27%로 줄어들며, 공동주택(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의 비율은 5%에서 72%로 증가한다. 지난 70년은 인구가 끊임없는 도시로의 인구가 집중함에 따라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했던 시기였다. 국가는 국민에게 집을 공급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는 ‘추상적’인 국민에서, 대학생, 사회초년생, 외국인, 새터민 등 다양한 국민에 맞춰 그들의 삶을 바꾸는 정책들이 더욱 필요하다. (유동근 교수ㆍ서울대)

▶도깨비시장= 남대문 도깨비시장은 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소비사회 성숙기 등 전 시기에 걸쳐 근대 한국인들의 소비 욕구(needs)와 소비욕망(desire)을 체현하는 공간이었다. 한국소비문화는 압축근대화와 소비문화형성에 개입한 국가의 영향을 받았다. 이를 규율적 모더니즘의 소비문화로 규정할 수 있다. 압축근대화로 인한 궁핍으로부터 근검절약하는 모습과 물질주의적 소비욕망을 드러내는 소비자로서의 욕망과 자기절제의 두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60년대 이후 가구 소득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지만 자기실현과 자기 표현을 위한 물건의 소유와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외양중심의 물질주의적 소비양상을 만들어 냈다. 다른 한편 굶주림과 전쟁과 불안한 사회에서 장래에 대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절약정신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절약캠페인과 같은 소비규율과 결합해서 자아중심의 소비욕망을 억제했다. 규율적 모더니즘의 소비문화는 지난 50여 년간 압축근대화의 결과로 나타난 문화적 양상이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한국인들이 외양중심의 물질주의 소비문화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다.(강명구 교수ㆍ서울대)


▶통일벼= 1970년대 통일벼를 앞세운 한국의 녹색혁명은 일제강점기 유전학을 적용한 근대적 육종학과 관련이 있다. 광복 후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 주도한 국제적 프로젝트로서의 녹색혁명과 한국의 이 세계사적 사건에 가담함에 따라 식량증산은 빠르게 진행된다. 녹색혁명의 열풍이 지나가고 통일벼가 퇴장한 1980년대 이후 식생활은 급속도로 서구화된다. 벼 품종의 역사에는 시대의 자취가 남아있다. 우리 앞의 밥 한 그릇 안에 1950-60년대의 전 세계적 냉전체제,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와 농촌 개발 정책,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민주화와 소비 사회의 신장, 1990년대 이후의 세계화 등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김태호 교수ㆍ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개천에서 용나기=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는 지난 광복 70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와 성취를 나타내는 영역 언제나 사회적 공론장의 중심에 위치해온 쟁점이었다. 교육을 둘러싼 핵심적 쟁점들은 사회변동과 발전에 따라 늘 변화해 왔다. 국가형성기인 광복 직후 한국의 교육은‘문맹’문제와 의무교육의 제도화가 주요한 과제였다. 1960-70년대 한국사회는 근대화라는 이름하에 급속한 도시화와 공업화를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1980년대 이후의 대학교육, 특히 소수의 명문대학의 입학으로 초점이 옮겨갔다. 한국의 교육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그것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교육의 효율성이나 형평성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그것의 초점은 입시경쟁과 학교입학제도였다. 한국의 교육열은 사회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평가되었으나 최근 과도한 입시경쟁은 인성을 파괴하고 또한 여기에 참여할 수 없는 계층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근식 교수ㆍ서울대)

▶주민등록=지난 70년간 한국에서 국가가 수행해 온 개인의 신분확인 제도는 (호적을 대체한) 가족관계등록제도, 주민등록과 주민등록증제도이다. 한쪽 끝에서 이들 제도는 인간․시민 개인의 멤버십의 증명이지만, 반대쪽 끝에서는 국가가 전인구를 파악․등록하고 관리한다는 차원을 갖는다. 크게 보면 이런 목적의 제도는 적어도 국가가 존재한 이래, 늘 있어온 것이지만, 근대 국민국가는 주권자 인민의 평등한 등록이라는 명분과 조사․등록의 기술, 양쪽 모두에서 새로운 기원을 만들었다. 20세기초 ’민적법‘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신분등록은 식민지기 이래의 호적제도를 거쳐 2008년 가족관계등록제도로 바뀌었지만, 그 명칭부터가 개인의 신분보다는 ‘가족관계’를 내세우는 등 여전히 큰 틀에서 보면 호적제도의 영향 속에 있다. 한편 1960년대에는 거주지를 기준으로 해서 전 국민을 등록하고 거주․이동을 파악하는 주민등록제도가 등장했고, 1968년부터는 보완․강화 장치로서의 주민등록증 제도가 추가됐다. 이런 제도들은 한편으로 행정의 효율성과 주민의 편리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 특히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식별장치에 의한 개인정보의 과다한 수집과 통합은,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환경 속에서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서호철 교수ㆍ한국학중앙연구원)

▶치맛바람= 한국의 높은 사회이동은 단순히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사실은 해방 70년 이래 대한민국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준 대표적인 힘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자신의 능력껏 좋은 삶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동력이었다. 이를 위해 가족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전력투구했다. 1960년대 등장한 ‘치맛바람’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리고 대학입시, 고시합격 등 여러 가지 출세의 길을 통해 학력을 통한 사회이동은 단순히 신화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이었다. 하지만, 현재 90년대 후반 이후, 사회의 자유화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역설적으로 점차로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낮아져 가고 있다.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가 아닌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의 주요수단이었지만, 이는 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며 가족의 동원가능한 자원의 정도가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면서 교육은 점차 특정계급의 재생산을 위한 사회적 폐쇄의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현저히 축소된 오늘날에도 교육열은 쉽사리 꺼지지 않고 ‘치맛바람’과 ‘개천에서 용 나는 꿈’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이것이 약화되는 순간 한국사회의 연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주윤정 박사ㆍ서울대 아시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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