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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박승윤]87년 체제의 사생아 ‘배신의 정치’
한달 넘게 대한민국을 떨게 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세를 멈추고 잦아드는 모양새다. 전철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보니 메르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극복되고 있는 것 같다.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부실한 초동 대응등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ㆍ방역체계를 점검하고 재정비할 시점이다. 그런데 국가의 질병관리 시스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해양경찰청 해체까지 단행한 박 대통령의 결기를 떠올리면 이상할 정도다.

박 대통령은 그 와중에 한달 전 국회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최근 거부권을 행사,정국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사실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구속력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다분히 있다.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거부권 카드가 예상됐기에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를 여권내 권력투쟁으로 비화시킨 건 박 대통령의 직설적인 고강도 발언이다. 그는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야 할 것”이라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특히 공무원연금법 개정 협상과정에서 야당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수용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콕 짚어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국무회의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총에서는 유 대표를 재신임했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강경 방침이 전해지면서 여당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새삼 실감한다.

문제는 이렇게 대단한 대통령이 정작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검찰, 국가정보원등을 움직여 재임중에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5년 단임이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선거때 내건 공약들을 제대로 이행하는게 가장 큰 임무인데 중간에 변질되거나 약화되기 일쑤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레임덕이 만성화되면서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을 기회도 없이 정책 추진 동력을 잃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이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공약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28년전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로 수립된 이른바 ‘87년 체제’의 부산물이다. ‘87년 체제’는 산업화를 이어받아 여야간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민주화를 실현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한 최선의 정치질서, 즉 모든 사람들을 최선의 상태에서 행복하게 해주는 정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5년 단임제, 소선거구제 등은 표심만 쫓는 ‘포퓰리즘 정치’, 국민보다 정권 쟁취만 생각하는 ‘발목잡기 정치’를 불러왔다. 개헌 논의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배경에는 절제와 정의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짜자는 요구가 담겨있다. 임기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근절코자 한다면 정책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수립하는데 디딤돌이라도 놓아야 한다.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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