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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임없이 새로움 추구한 시인…하나된 남북 위해 몸 던진 선구자…
金 변호사가 말하는 아버지 김규동 시인은…
金 변호사가 말하는 아버지 김규동 시인은…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의 선친인 문곡(文谷) 김규동(1925~2011·사진) 시인은 전쟁과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모더니즘 시인이지만, 서울에 스승을 만나러 왔다가 갑자기 38선이 막히면서 실향민이 된 아픔 때문에 평생 통일을 염원하다 4년전 작고했다.

둘째 아들인 김현 변호사가 국군포로 송환에 열성을 바치는 이유 역시 김 시인의 통일염원과 무관치 않다. 시 ‘두만강에 두고 온 작은 배’에는 그의 뜨거운 향수가 배어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한국신시학회 회장을 지낸 김경린 등과 함께 후기 모더니즘 경향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즈음 그는 약 6년간 연합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장 등 언론인 생활을 겸한다. 초기 작품인 ‘나비와 광장’은 한국전쟁후 좌절과 아련한 희망을 그렸다. ‘어린 나비의 안막(眼膜)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 뿐이 없기에 (중략)/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김 변호사는 이 시의 의미를 사춘가가 되어 깊이 인식하고, 아버지가 못 다 펼친 희망나눔, 못보고 간 민족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노라는 뜻을 다진다.

김 시인은 영화감독 신상옥과는 친구, ‘풀’의 시인 김수영과는 네살 아래이지만 많은 교감을 나눴다. 자유실천문인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문단의 후배들인 고은, 백낙청씨와도 뜻을 갖이했다. 삼중당 주간을 거쳐 1960년 한일출판사를 세워 ‘빙점’의 출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만해문학상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아버지 김 시인의 펜 드는 횟수가 줄고 출판에 매진한 것은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아버지는 추운 날 아들의 손을 바지주머니에 감싸 넣고 다니며 러시아에 파견된 조선인 스파이 스토리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 해주었고, 대천과 만리포 등 바다에 놀러가면 부인을 쉬게하고 손수 요리했다고 한다.

감동적인 러브레터로 부인과의 결혼에 골인한 김 시인은 고향동네의 이웃이야기에서 부터 모택동, 히틀러, 말러, 헤밍웨이,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구수한 입담이 끊이지 않았고. 틈틈이 미술 서예 작품 활동을 했다고 김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 아버지 김 시인의 작품을 걸어놓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도 시를 발표한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지인들에게 말이다. 제목은 ‘아버지 김규동시인.’

“만리포에서 당신이 끓여주신 향긋한 된장국 먹고 붉은 저녁 노을 바라보며 듣던 헤밍웨이, 피카소, 고향 이야기 귀에 쟁쟁하네. 끊임없이 새로움 추구한 시인. 하나된 남북 위해 몸 던진 선구자. 고개 숙여 당신을 생각합니다.”

김변호사는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싶다”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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