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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조선ㆍ고구려-돌궐 동맹, 한국-터키 우정으로 발전했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터키가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전성기때 이웃하던 ‘돌궐’의 후예라는 사실은 동서양의 학계가 동의하는 바이다. ‘칸가르데쉬’라는 말은 ‘피를 나눈 형제’를 뜻하는 터키어이다. 그들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민족에 대해 ‘칸가르데쉬’라고 부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 3,4위를 결정하는 한국-터키 전은 승부 보다도 ‘형제의 나라’라는 모토로 양국 응원단과 선수들이 보여준 우정의 세레모니가 더 기억에 남는다.

역사는 함부로 얘기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연성있는 역사적 사실(史實)들이 여러 개 발견되고,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서로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어쩔 수 없다.

터키어는 알타이어계 언어로 한국어, 일본어와 어순이 같다. 보드룸 해변거리에서 만난 음식점 주인은 한국인 일행을 만나자 대번에 “꼬레, 오케이?”라면서 알아보고는 춤을 추며 반긴다. 인근 공터에서 40대 남자 둘이서 하는 주사위게임은 우리나라의 투전과 비슷하다. 우리는 두 패를 감추어 살짝 본뒤 베팅 레이스를 하는데 비해, 터키인들은 베팅을 먼저한 뒤 두개의 작은 주사위를 한꺼번에 던져 고배당이 가능한 같은 숫자 즉 ‘땡’인지, 합친 숫자의 끝수가 높은지를 확인한다.

▶지나가던 한국인 일행에게 말을 걸어 먹을 것을 권하는 터키 아저씨


터키 민족의 발원지는 한민족과 같은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일대이다. 돌궐과 몽골, 신라 모두 ‘크다’는 의미로 ‘한’이나 ‘가한, 간‘을 쓰는데, 파생된 의미로 왕을 표기할때 ‘간, 칸, 가한’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몽골의 칭기즈칸, 서기 6~7세기 고구려와 동맹을 맺었던 돌궐의 계민가한, 신라의 거서간, 마립간을 들 수 있다.

바이칼 호 인근 민족들의 공통된 신은 불한신이다. ’불‘은 밝음, 해 등을 뜻하고,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터키는 자신의 조상이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몽골-흉노족이라고 밝힌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들 민족은 부리얏족, 코리족과 공생하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코리족들은 고구려,고려 즉 코리아가 자신들과 동일한 민족이라고 얘기한다. 실제 이들의 민속신앙은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 징기스칸 태무진의 어머지 민족인 부리얏족이 부여를 건설했다는 학설도 있다.

▶주사위를 던져 우리의 투전 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 터키시민들


바이칼 일대에서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를 ’조선류‘라고 부르는데, 한반도에서 이곳까지 ‘쥬신(조선) 제국’으로 불렀다는 사학계 일각의 주장이 떠오른다. 특히, 동쪽의 밝은 임금이라는 뜻의 동명성왕을 길러낸 부여의 유화(柳花:버드나무꽃) 부인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학자 서정록은 코리와 부리얏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얼추 ’옛날 옛적 터키와 한국 조상이 한 동네에 살았었다‘는 심증은 간다. 사서가 기록하는 것으로는 고대국가의 틀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돌궐부족은 BC 12~1세기 고조선 연방의 일원으로 후계 단군 선출 논의에 참여할 정도로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몽골, 터키, 에벤키족, 카자흐스탄에서는 고조선 연방의 수장인 단군을 탱그리(TANGRI)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동양인을 약간 닮은 터키 으스파르타 문화관광국장(오른쪽)과 문화관광국 산하기관인 카페트박물관 관장. 이들에게 갑을 관계를 발견할 수 없었고 동반자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뒤 돌궐은 AD 5세기까지 고구려에 조공을 냈으며, 토문가한이 돌궐제국을 건설한 5세기 이후엔 대등한 동맹국이 된다. 수-당의 동진과 서진을 양국 동맹을 차단했고, 거란의 팽창을 억제했다고 한다. 611년 수나라는 돌궐에 고구려 공동정벌을 요구하지만, 돌궐은 이를 거부한 채 고구려 우호 사절단을 받아들이고 수나라 협공 모의까지 하게된다. 수를 이어받은 당의 돌궐 선제공격으로 뜻은 이루지 못했다. 페르시아제국 압바스 왕조의 용병으로 가담한 투르크군은 751년 투르크계 유목민 카를룩족과 연합해 텐산산맥 서북쪽 기슭의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군을 괴멸시키기도 했다.

▶한국 여학생 처럼 장난기가 넘쳤던 터키 여고생들. 근엄한 박물관에서 조각상 흉내를 내고 있다.


7세기 이후 터키가 서쪽으로 이동하고, 한국이 극동의 한반도로 세력 축소되면서 관계가 끊겼던 두 나라는 1950년 한국전쟁때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던 터키가 ‘형제국을 돕자’는 슬로건으로 1만5000명을 모아 한국에 파병하면서 다시 혈맹의 옛 정을 되살린다. 지난 7일 이스탄불에서는 한국 참전용사 투우란 쵸크메(86) 옹이 작고해, 양국 전우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국 국기를 관에 두르고 영결식을 거행했다.

▶지난 7일 이스탄불에서 거행된 한국전 참전용사 투우란 쵸크메의 영결식


참전 용사는 곳곳에서 만날수 있었다. 한국취재단 일행은 첫 도착지인 안탈리아 공항에서 만난 관광버스 운전기사로부터 자기 할아버지 아흐맷씨가 참전용사라는 말을 전해들은 이후, 시데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 부렌트 이즈구잘씨, 불단에서 카페트를 짜던 요사르도언 알괴씨와 잇달아 조우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부산에 묻혀있는 750명의 터키 전우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터키 민간 신앙에 ‘동방에 새로운 천국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점은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한국은 중국,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터키를 많이 찾는 나라이다. 소에 쟁기를 씌워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은 흔한 우리의 시골풍경과 흡사하다.

한국과 터키는 지난 2013년 9월 멕시코, 인도네시아, 호주 등과 함께 떠오르는 신흥국 모임인 믹타(MIKTA)를 구성해 국제사회 새로운 동맹국으로서의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의원외교 차원에서도 믹타(MIKTA) 구성원 간 교류를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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