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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심을 담은 연기…뮤지컬 ‘영웅’ 주연 정성화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뮤지컬 배우 정성화는 조각 미남도 아니고 아이돌도 아니다. 나이는 마흔을 넘겼고 개그맨 출신이다. 그런데도 지난 24일 그가 출연한 뮤지컬 ‘영웅’이 끝나자 젊은 여성 관객들은 흥분한 얼굴로 “정성화 너무 멋있어”, “노래 너무 잘해”라며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정성화가 2012년 이후 3년 만에 ‘영웅’의 안중근으로 돌아왔다. 이날 공연 전 분장실에서 만난 정성화는 “고향에 돌아와서 동네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에이콤인터내셔날]

“가끔 ‘영웅’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음악이 워낙 좋으니까요. 소속사에서는 근엄한 안중근 이미지로 굳어질까봐 반대를 했죠. 하지만 제가 ‘라카지’에서 게이도 하고, ‘맨 오브 라만차’에서 할아버지도 하고 변화무쌍했잖아요.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영웅’은 지난 2009년 초연 이후 거의 매해마다 무대에 오르고 있다. 수준높은 음악, 안무, 무대 등이 맞아떨어져 인기를 누렸다. 해를 거듭하며 수정ㆍ보완을 거치고 있는 것도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 공연에서는 안중근을 돕던 중국인 왕웨이가 일본군인들에게 구타당한 뒤 곧바로 왕웨이의 장례식이 이어졌다. 올해는 두 장면 사이에 한발의 총소리가 추가됐다.

“하얼빈 거사를 앞둔 안중근에게 왕웨이의 죽음이 크게 다가와야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발의 총성이 들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부르는 듀엣곡 ‘운명’도 과감하게 들어냈어요. 이토 미화 등 논란의 여지가 꽤 있었으니까요”
[사진제공=에이콤인터내셔날]

그동안 안중근을 거쳐간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정성화는 최고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안중근 평전이나 이문열의 소설 ‘불멸’ 등을 읽으며 안중근에 대해 더욱 파고들었다.

“책을 보니까 안중근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사냥을 즐겼던 사람이었어요. ‘이런 분이라면 급박한 분위기에서 어떤 모습일까, 남들보다 침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연구한 부분들을 이번에 연기할 때 추가했죠”

보다 진솔한 안중근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눈에 힘도 덜 주고, 걸음 속도에도 변화를 줬다.

“이전까지는 근엄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좀더 유연하게 하려고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안중근이 의인(義人) 일변도로 보여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안중근은 친구 왕웨이를 만났을 땐 호탕하게 웃고, 거사를 앞두고 두려워하기도 해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충실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녹음반주(MR) 대신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반주도 더해진다. ‘장부가’ 등 웅장한 노래들이 오케스트라 반주로 더욱 살아나게 됐다.

“가슴을 직접적으로 때리는 음악이 있어야 관객들이 더 감동을 받을 거예요. 객석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기가 막혔어요. 지휘자와 함께 호흡하면서 노래하니까 굉장한 카타르시스도 느껴졌죠”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애국주의를 강요하진 않는다. 안중근이 거사를 결심하기까지의 고뇌와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보내며 용기를 북돋우는 어머니가 눈물을 쏟게 만드는 작품이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니까 꼭 봐야 합니다’, ‘아베 총리가 망언을 일삼고 있으니 꼭 보러와주세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아요. 뮤지컬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보러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고, 집에 돌아가서 포털 검색창에 ‘안중근’ 석자를 누른다면 전 기쁠 거예요”

정성화는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등 성실한 배우로 유명하다. 굵직한 목소리로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지만 요즘도 노래 선생님에게 발성을 배우고 있다. 지난 2013년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장기 공연하면서 목이 상했는데, 가장 좋은 목관리 방법은 소리를 옳게 내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처음 앙상블(합창)하는 친구들도 노래를 굉장히 잘해요. 하지만 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봐야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해줍니다. ‘45도 각도로 서면 더 멋있게 보일까’ 이런 것만 연구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그런 것은 좋지 않아요. 연기에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BS 개그맨 공채 출신인 정성화는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계에 데뷔했다. 2013년 ‘골든티켓어워즈’에서 티켓파워 1위를 차지하는 등 톱배우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겸손하다.

“‘영웅’이 1700석인 블루스퀘어에서 100일 공연하면 관객은 17만명이잖아요. TV 컬러바 나올 때(끝날 때) 시청자보다 적은 숫자예요. 아직 저를 개그맨으로만 알거나 아예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국민 다섯명 중 세명은 제가 뮤지컬 배우라는 것을 알도록 더 열심히 할 거예요”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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