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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김종호]‘본(本)’을 지키는 사회적 묵계를 갈망하며
지난 3월 말 일어났던 독일 저가항공사 저먼윙스 소속의 비행기 추락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독일 뒤셀도르프로 향하던 승객과 승무원 등 무려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사건이다.

비즈니스 출장으로 혹은 여행의 부푼 꿈으로 설레었을 승객들을 졸지에 싸늘한 주검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기체 결함이 아닌 부조종사의 이상행동에 기인했음이 알려지면서 사건을 지켜보던 필자는 더욱 참담한 심정이었다.

프랑스 검찰은 이 사건을 부기장의 고의적 추락사고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우울증을 앓았던 한 젊은이의 무모한 자살비행이었던 것이다.

묵계(默契)라는 말이 있다. 흔히 ‘묵약(默約)’이라고도 하는데,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말 없는 가운데 성립된 약속이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사회 속에도 누가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묵계가 통하는 경우가 있다.

비행기 탑승객은 항공기 자체의 정비상태는 물론 승무원들이 전문가로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함으로써 비행이 안전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변호사에게 소송사건을 의뢰할 때는 법률전문가로서 그가 가진 법률지식과 상식, 윤리적 잣대 등이 모두 ‘정상적’일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 서로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배를 탄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인들이 아침저녁 몸을 맡기는 버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버스, 지하철의 기기적 상태는 물론 운전기사의 전문성에도 암묵적 동의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묵계가 파괴되는 경우는 어떤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앞서 언급한 독일 항공사 비행기의 예기치 않은 추락사고를 보자. 부기장의 우울증 치료 전력은 사실상 탑승객과 항공사 사이 암묵적 동의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한 마디로 ‘본(本)’이 무너진 일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계업계 역시 외부감사서비스를 의뢰하는 회사와 수행하는 외부감사인 사이에 묵계가 존재한다.

공공재의 성격을 띠는 회계감사를 수행하는 외부감사인은 외부회계감사 기준 및 절차에 따라 투명성과 독립성, 직업적 윤리와 소양을 갖추고 감사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회사는 외부감사인에게 투명한 재무제표의 제시와 정당한 감사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며, 이해관계자들은 외부감사인의 감사 보고서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 정상적인 ‘묵계’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외부감사인의 전문적 지식이나 소양 등의 부족 또는 회사가 투명성이 결여된, 근본이 흔들린 재무제표를 작성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업계에서는 감사보수 정상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감사인들이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감사보수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 책임을 갖는 전문가로서 상호신뢰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지켜지지 않는 회계업계의 절름발이 양상에 씁쓸함을 감추기가 어렵다.

세월호 1주기가 되던 날. 여의도에는 한 차례 폭우가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햇살이 찾아 들었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며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 같아 부끄러웠다. 잊어야 할 것이 있다면, 잊어서는 안 될 것들도 있다.

지난해 4월 16일 대재앙이 벌어지기까지 우리 사회에 ‘본(本)’이란 것이 존재나 했던가. 성숙한 사회의 완성을 위한 사회적 묵계가 우리 사회 곳곳에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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