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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면데면한 우리, 도시인의 삶은 여전히 안녕한지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미국 뉴욕의 루즈벨트역.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지만 ‘함께’ 있지는 않다. 데면데면한 모습으로 끼리끼리 서 있다. 홀로 소외된 이의 모습도 보인다. 서용선(64) 화백의 작품 ‘루즈벨트역’이다. 서 화백은 지하철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의 인간관계를 보류한 채” 신문을 읽거나, 광고를 보는 척 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도시인들의 심리를 포착했다. 지하철역 속에 도시의 풍경이 압축돼 있다.

서용선의 작품 100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삼청동 금호미술관과 학고재갤러리에서 동시에 오픈했다. 금호미술관이 3년 가까이 공들여 추진한 기획 초대전이다. 여기에 학고재갤러리가 힘을 보탰다. 
루즈벨트 역을 그린 풍경.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높이 6.5m짜리 대형 회화작품을 포함, 조각, 드로잉 등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서용선은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디테일이 생략된 거친 붓질, 붉은색 얼굴을 한 인물 등 강렬한 색감에 생생한 메시지를 담는 작가가 1980년대 이후 천착해 온 도시라는 키워드를 이번 전시에서는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 베이징, 뉴욕, 멜번, 그리고 베를린까지 작가가 7~8년 전부터 체류하며 포착한 5개 도시들의 풍경이 금호미술관 전관을 5개 공간으로 나눠 각각 전시됐다. 주로 지하철역, 카페, 공원 등의 도시 풍경을 담았지만, 도시 그 자체보다 도시인과 도시적인 삶에 대한 관찰에 더 가깝다. 
역삼역을 그린 회화작품 2점.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이번 전시에는 평면 회화작품 43점과 조각 등 입체작품 44점이 포함됐다. 특히 육송 목판에 회화를 접목한 작품은 기법상으로는 작가가 처음 시도한 방식이다. 금호미술관에 걸린 ‘뉴스와 사건’이 대표적이다. 14조각으로 구성된 목판각화는 지난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주요 사건들을 기록한 작품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통진당 해산 선고 등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담았다.

작가는 목소리를 내기보다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했다. 그리고 사건 그 자체를 넘어서, 뉴스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담론이 형성되고 소비되는 도시, 서울에 주목했다. 정확히는 급속하게 발달하는 도시의 정보망과 권력의 집중화에 대한 기록이다.

서 화백은 “지난 1년 내내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장 긴장시키고 진동시킨 것은 세월호였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 사건이 소통되는 자체가 이 도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손잡고 공동으로 주최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미술품 보관 및 전시와 연구를 담당하는 미술관이 미술품 거래를 주로 하는 상업갤러리와 함께 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영국 테이트모던도 화이트큐브와 손잡고,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도 가고시안과 협력해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미술계의 산학협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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