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미술작품이 말한다, 즐거우면 된거라고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1만개 나일론 끈으로 만든 대형 설치작품.

서로 다른 길이로 천장에 매달아 놓은 백색 끈 꾸러미들이 마치 거대한 비구름이 하강한 것 같은 조형물로 탄생했다. 신발을 벗고 오감을 바짝 곤두세운 채 이 ‘비구름’을 찬찬히 통과하면 눈부시게 하얀 조명으로 채워진 벽이 나온다. 사후세계에 당도한 듯한 느낌이다.

일본 작가 오마키 신지의 ‘리미널 에어-디센드’는 관람객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끈, 천, 버블과 같은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해 공간 전체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구성하고, 관객들에게는 극적인 현상을 체험하도록 유도했다. 

리미널 에어 -디센드, 2006-15, 나일론 실, 형광등, 유리, 나무 가변설치(2)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현재 동경예대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작가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등 주요 국제전시를 통해 명성을 쌓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인 ‘인터플레이(Interplay)’전을 14일부터 8월 23일까지 서울관 제 6전시실과 지하 3층 창고 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장소와 장소, 장르와 장르 사이를 허물고 관람객이 직접 작품에 개입해 즐기는 전시다. 회화, 건축, 디자인 등 영역을 넘너들며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 3인과 1팀이 참여했다.

‘상호 교차’의 뜻을 가진 인터플레이는 예술분야에서는 서로 힘을 합쳐 기량을 최대화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디자인과 건축분야 작가들의 협업이 이에 해당된다.

인터플레이전은 장소 자체를 작품으로 보는 콘셉트로, 다양한 영역의 작가들이 빨대, 벽지, 네온, 선풍기, 나일론, 실 등 일상의 소소한 소재들을 사용해 장소에 맞는 작품을 설치하고, 여기에 관람객들의 체험이 더해져 소통하고자 하는 전시다. 소재는 물론, 관람객들의 즐거움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팝아트와도 닮았다.

전시장 첫번째 방은 듀오아티스트 ‘아바프(AVAF)’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아바프는 브라질 작가 엘리 수드브라크와 프랑스 작가 크리스토프 아메이드-피아송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은 매스미디어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차용해 새로운 패턴을 구성하고, 이를 드로잉, 페인팅, 네온조각, 비디오, 퍼포먼스 등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바프, 2015, 월페이퍼 10점, 영상,네온, 가변설치(8)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설치됐던 네온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맞게 리프로덕션해 선보였다. 작품 제목도 원래 ‘스퀘어 리본스(Square ribbons)’라는 이름이었는데 ‘활발하게 탐욕스로운, 절대적으로 유연한’으로 바꿔 달았다. 형형색색 팝적인 컬러의 월페이퍼로 가득 채워진 전시장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관람객을 유혹하고 끌어들인다. 자웅동체 이미지나 플레이보이 잡지에서나 볼 법한 그림 등 소위 하위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중첩시켜 인권, 계급, 성, 국가정체성 등 다양한 이슈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스펙트라 더블, 2015, 컬러 형광등, 모터 팬(1)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호주 작가 로스 매닝은 빛을 이용한 키네틱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모터 팬이 달린 컬러 형광등이 움직이면서 빛이 혼색돼 공간을 채우는 작품이다. 작가는 전자제품을 수리하거나 뮤지엄 테크니션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화면이나 프로젝션 기술에 쓰이는 ‘가색혼합법’을 터득해, 빛의 파장을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전시 공간에서는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에 노란빛이 더해져 빛이 만들어낸 오케스트라를 체험할 수 있다.
유선사(遊仙詞), 2014-2015, 가변설치 빨대구름 25x5m, 장판지200장, 플라스틱 빨대, 실리콘 줄(1)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 지니 서는 동양적인 정신을 구현한 건축적 공간 작업을 선보였다. 작은 빨대들을 털실 목도리 짜듯 일일이 꿰어 천정에 매달고, 바닥에는 한옥 구들장 위에 쓰던 콩기름 먹인 장판지 200장을 말아 놓았다. 15세기 문인화가 강희안의 산수화와 16세기 여성 화가인 허난설헌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작품에는 ‘유선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한국의 고전적이고 관념적인 풍경을 평면에서 3차원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관람객은 이 서정적인 공간을 거닐며 산수화 속의 인물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방은 앞서 소개한 오마키 신지의 작품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깥에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직접 안으로 들어가 걸으며 작품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전시를 기획한 최흥철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의 전시 개념이 작품을 특정 공간에 두고 보여줬다면, 설치미술은 공간을 채우는 개념으로 전시를 발전시켜 공간(장소) 자체가 곧 작품이 된다”면서 “인터플레이전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위계(Hierarchy)로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 요소들을 섞는 것으로, 현대미술의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