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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연극 ‘나생문’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시체들은 절대 나쁜 짓은 안한다고요. 사실 살아있는 사람이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기도 하지”

시체들의 머리카락을 훔친 가발장수는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누구도 가발장수의 말을 반박하지 못한다. 대낮에 벌어진 한가지 사건을 두고 산적, 부인, 무사, 나무꾼이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제각기 다른 진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나생문’은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라쇼몽’을 각색한 작품이다. 라쇼몽(羅生門)을 한국말로 옮기면 나생문인데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사용되던 문을 뜻한다.
[사진제공=코르코르디움]

극중 산적이 무사의 부인을 겁탈한 이후 무사는 죽은 채 발견된다. 법정에 선 산적과 부인, 무당의 입을 빌린 무사의 영혼은 서로 엇갈린 진술을 내놓는다.

산적은 무사와 정정당당한 칼싸움 끝에 이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인은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무사의 눈빛을 보고, 자신이 무사를 찔러 죽였다고 말한다. 무사의 영혼은 명예를 위해 자결했다고 밝힌다.
[사진제공=코르코르디움]

목격자인 나무꾼은 부인의 부추김에 산적과 무사가 싸운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가발장수는 아무도 100%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나생문’과 ‘덤불 속’을 엮어 영화를 만들었다. 인간은 이기심으로 인해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마저 속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작품이다.

영화는 강렬하게 쏟아지는 폭우, 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햇볕 등 유려한 흑백 영상으로도 유명하다. 반면 연극은 무대 위 대나무숲이 배경의 전부다. 하지만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반면 연극에서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탁’ 소리가 나는 타악기와 북소리 등만 간결하게 들려온다.

등장인물들의 진술이 엇갈릴 때마다 정숙한 부인과 교태부리는 부인, 용맹한 산적과 멍청한 산적 등 캐릭터도 바뀐다. 연극은 영화에 비해 이를 과장되고 코믹하게 표현했다.

구태환 연출의 말대로 “내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연극 ‘나생문’은 오는 5월 16일까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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