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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훈의 이슈프리즘> 다시 ‘검찰공화국’에 기대며….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특수통이라던 ◯◯◯ 검사, △△△ 전 검사였다면 이러지도 않는다. 12년만이다. 지난 12년동안 “오, 저 선수라면 국민이 믿을 거야”라며 기대했던 프로 검사는 없었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촉발된 정ㆍ관계 검은 거래 의혹 및 불법대선자금 수사는 검찰사는 물론 한국 현대사의 채색을 바꿔놓을 일로 기대를 모은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이 천명한 “수사 대상과 범위를 한정짓지 않겠다”는 일성이 빈말같지 않다. 2003년 송광수-안대희-이인규-홍만표-문무일 라인이 일궈낸 ‘1차 사회환기 푸닥거리’의 후속 버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비슷한 것이 감돈다.

28회 사시를 합격한 문무일은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하고 검사로 임용된 뒤, 중ㆍ남부 지방 검찰청을 전전한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엔 검사든 법관이든 임관 시점 배치는 연수원 및 시보 때 성적순이었다. 문무일은 사법시험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검사 임용자 중에서는 중위권에 머물렀다.

30대 초반 전주지검 남원지청에 근무하던 1994년 가을 지존파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지존파 사건 피의자들의 공소사실 중 놓칠 뻔 했던 핵심 사실관계 하나를 찾아 공소사실에 추가한다. 지존파 일당이 자동차 추락사고로 위장시킨 변사체에서 살해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주니어 검사 문무일은 현장을 다니고, 변사체의 부검 등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삼촌 뻘 수사관들과 토론과 분석을 한 끝에 지존파 사건에서 묻힐 뻔 했던 시신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어린 검사의 치밀함과 세심함은 법무부 검찰국에 보고됐고, 최환 검찰국장은 문무일의 중용을 장관에게 건의했다.

1995년 2월 서울에 입성한 그는 형사부에 잠시 근무하다가 전두환, 노태우 등 12.12 쿠데타 주역들을 단죄하는 12.12, 5.18 특별수사본부에 다시 발탁된다. 치밀했던 전두환의 쿠데타 음모가 세밀하게 드러난, 이른바 YS의 ‘역사 바로세우기 프로젝트’의 주역이 된다. 돌아보면 YS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서 그렇지 금융실명제와 역사 바로세우기 등 꽤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문무일은 자신을 발탁한 최환 서울지검장의 기대감 대로 좋은 성과를 올리면서 이듬해 서울지검 특수2부로 영전된다. 한국통신 비리 등 숱한 족적을 남긴 뒤엔 검찰총장 지근거리에서 검찰제도 개선 연구관 역할 등 기획 업무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정권때엔 불법대선자금 수사팀에 가담해 살아있는 권력핵심부 인사들을 단죄했다.

문무일은 얼핏 소년같은 면이 있다. 낼 모레면 50대 중반인데, 해맑다. 검찰조직에서 해맑은 인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이 맑은 검사들을 꼽아보자면, 지금 청와대에 가 있는 이명재 특보,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고(故) 윤동민 김앤장 변호사, 한나라당에 차떼기 오명을 씌우고 살아있는 권력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을 단죄한 송광수 전 검찰총장,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실무지휘한 이인규, 지금 법무 차관을 맡고 있는 김주현, 반부패 특별수사본부장을 거쳐 지금 수원지검장을 하고 있는 강찬우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영(靈)이 맑은 인사들이다.

실체적 진실을 논하는 법조 바닥에서 영(靈)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말도 안된다고 비난할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관과 검사는 법조문과 건전한 사회통념에 의거하되, 순수한 양심, 영혼의 부름에 따라 복무해야 한다는 기본을 상기시키면,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는 것은 외부 유혹과 외압에 대한 맷집이 강하고, 그 처분에 대한 법률적 신뢰, 국민의 믿음과 연결된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2003년 부패한 대한민국은 송광수-안대희-이인규-홍만표-문무일에 기댔다. 검찰이 국민적 지지 속에 각 기업의 준법(투명경영)추진본부 설치, 사회공헌 확대, 부정한 자금으로 지은 정당 청사의 폐쇄, 대통령의 사과 등 사회 각계의 변화를 초래하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다.

민주공화국이 검찰공화국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2003년 주역들은 이듬해 봄,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금 좀 나아졌다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속살 일부가 곪아 있다. 어른들의 난맥상에 아이들이 윤리와 법, 제도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일핏 법에 따라 사회가 돌아가는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법을 피하고, 권력 가진 자가 법을 악용하며, 법 대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목도한다. 2003년이 ‘대놓고 불법’이었다면, 지금은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비상식과 탈법 행태가 교묘하게 행해지면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김진태-문무일 팀에 다시 기대본다. 송광수-안대희가 ‘원래 잘 드는 칼’이었다면, 무림의 ‘도사’ 같은 김진태, ‘소년’ 같은 문무일은 ‘날이 갈수록 지혜로워지는 칼’이다. 요즘 시대에 적합하다는 검사 상이라는 느낌이다. 김진태-문무일이 고도화된 난맥상에 한바탕 지혜로운 회초리를 치고 난 뒤 12년전 그때처럼 멋지게 무대 아래로 내려왔으면 좋겠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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