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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당신은 부먹파? 찍먹파?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시즌 2를 보니 두 남녀가 탕수육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즐기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남자는 소스를 한꺼번에 부어서 먹고 여자는 고기 한 점마다 찍어서 먹더군요. 요즘 이를 가리켜 각각 ‘부먹파’와 ‘찍먹파’라고 한다지요. 두 남녀는 바지락칼국수도 다르게 먹더군요. 남자는 면을 먹기 전에 조개부터 다 발려 먹고, 여자는 젓가락에 집히는 대로 그때 그때 까 먹습니다. 남녀의 서로 다른 성향을 대비시키는 대목입니다. 성격과 취향이극과 극인 두 남녀는 언젠가는 아마도 “이게 사랑이 아닐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연애에 빠지거나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들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의문일 것입니다. 부먹파와 부먹파가 만났을 때 행복할까, 부먹파와 찍먹파가 어울려야 더 잘 살까. 


▲세런디피티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주연한 ‘세런디피티’(Serendipity, 한국 개봉명 ‘세렌디피티’)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5년쯤 전 개봉했죠. 각자 연인이 있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의 한 가게에서 마지막 남은 장갑 한 켤레를 동시에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각자의 연인에게 줄 크리스마스선물을 사러 들린 가게, 딱 하나 남은 물건을 동시에 집다니이런 기막힌 만남이 있을까요? 이 둘은 저녁을 같이 보내고 헤어지게 되는데, 남자가 전화번호를 묻자 여인은 재회를 운명에 맡기자고 합니다. 남자의 연락처가 적힌 지폐로 솜사탕을 사먹고, 여자는 책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헌책방에 팝니다. 지폐가 세상 뭇사람들을 돌고 돌아 여자에게 이르거나, 책이 여러 주인을 거쳐 남자의 손에 들어오거나 하면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여인에게 반한 주인공은 자신이 상대를 만날 수 있었던 확률을 계산해보고 5840.82분의 1이라고 합니다. 이 확률을 적용한다면 ‘세런디피티’의 두 남녀가 다시 만날 수 있는가능성은 몇 제곱수가 될 것입니다. 극히 희박합니다.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사랑, 기기는 알고 있다

‘세런디피티’는 우연으로 얻은 뜻밖의 기쁨이나 행운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같은 제목의 영화는 사랑의 우연이 빚어내는 낭만성을 그리고 있지요. 하지만, 전혀 다른 ‘세런디피티’가 있습니다. 몇 해전에 MIT 인간역학 연구진은 매력적인 데이트 상대가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알려주는 휴대용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세런디피티’입니다. 저널리스트 루크 도멜이 쓴 ‘만물의 공식’이라는 책은 이를 비롯해 빅데이터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사례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신탭이라는 앱은 술집에 설치한 안면 인식 카메라를 통해 바나 클럽 안에 있는 손님들의 인원수, 성비, 연령대 등을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합니다. 이미 지난 2011년부터 미국의 바와 식당 수십 곳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앱을 이용하면 어느 클럽의 ‘물’이 좋은 지 실시간으로 찾아보고 갈 곳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안면 인식 카메라를 통해 술집 손님의 인종, 키, 몸무게, 매력, 머리 색, 의상 유형 등에 관한 정보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기상천외한 앱들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사용자의 10m 내에서 매력적인 상대가 발견되면 알려주는 기술이나 신탭의 물 좋은 클럽 찾기 앱은 별로 신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탭의 특허에는 카메라에 마이크를 달아 손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고, 안면 인식 기술 카메라와 페이스북같은 소셜 네트워킹 프로필과 연동해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도 있습니다.

지난 2013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미국의 페이스북 이용자 5만8천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특정 메시지에 대해 어떤 사람이 클릭한 페이스북의 ‘좋아요’ 정보만을 가지고도 그 사람의 인종, 나이, 지능지수, 성적 선호, 성격, 약물사용, 정치적 성향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근거리통신기술과 안면 인식 카메라같은 기기가 소셜 미디어로 수집한 정보와 조합될 경우 얼마나 폭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갈수록 투명해지는 당신, 당신의 사랑

이제 우연이나 운명 따위에 사랑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한 연애의 대가를 빚만 남은 카드와 허송세월한 시간으로 치를 필요도 없습니다. 더 많은 결혼정보회사들이 이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더 정교한 컴퓨터의 분석으로 각 개인에게 맞는 짝을 매칭시켜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몰라도, 당신이 행복할 수 있는 상대, 당신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상대를 이미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이야기입니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는 어려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센서와 네트워크, 데이터입니다.

더 많은 기기와 신체에 센서가 내장됩니다. 센서로 감지된 정보는 네트워크로 전송되죠. 이것이 서버나 클라우드에 모이고, 수집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분석됩니다.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이고, 더 많은 데이터간의 상관관계가 밝혀집니다. 지금은 센서로 감지된 정보가 집합되는 포인트가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입니다. 이것이 사물인터넷이나 빅데이터의 간단한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를 통해 개인의 혈당, 심박, 땀 등의 정보가 모인다고 합시다. 사용자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감정상태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마저도 뇌파를 측정하는 센서로 대체될지 모릅니다. 얼굴 인식 카메라로 감지된 당신은 이 건강상태의 정보 덩어리이며 당신이 각종 SNS와 인터넷의 활동이력으로 존재합니다. 이 둘의 정보를 매칭시키면당신이 선호하는 상품은 물론 당신이 선호하는 이성까지도 예측가능합니다. 누구를 만났을 때 심박수가 더 많아지는지, 더긴장이 되는지, 더 행복해하는지를 기기는 알아챕니다. 또 당신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면 그 혹은 그녀와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확률마저도 수많은 커플들의 데이터와 비교해 산출해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데이터간의 매치는 더 정확한 결과를 산출해내겠죠.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대입니다. 이제 당신은 센서로 감지되고 네트워크로 전송되며 수집되고 저장되며 분석되는 데이터의 집합, 수의 묶음으로 표현됩니다. 연애나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기 혹은 신체에 내장된 센서로 파악된 데이터이지요. 당신의 소득, 인종, 나이, 학력, 지역 등 각종 프로필이나 웹경로로 추적된 취향, 그리고 신체의 변화 수치를 통해 당신에게 맞는 데이터의 집합체, 곧 최적의 연애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연애나 사랑이란 데이터 집합체간의 ‘매칭’ 인 것이죠. 연애 실패로 치르는 비용이 적어지는 만큼, 이 데이터간 짝짓기는 쉽게 업로드ㆍ다운로드 그리고 삭제될 수 있습니다. 곧 저장고(클라우드)에서 다른 데이터묶음을 찾아내면 그만일테니까요.

우리는 수천년간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읽고, 감지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믿음은 착각일 뿐일지도 모른다고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대는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인지합니다. 우리는 과학과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더욱 투명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투명해지는 것은 인간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에겐 스스로도 파악할 수 없는, 영원한어둠 속에 숨겨진 자아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이 명쾌하게 닿을 수 없는, 이성의 빛이 밝힐 수 없는 미지의 자아가 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 존재의 양식과 본질마저도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 영혼의 ‘불투과성’은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시대입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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