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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상범의 아! 車!]현대차 SUV의 전설, 갤로퍼 이야기
[HOOC=서상범 기자]지난번 쌍용차 무쏘 이야기가 나간 후 몇몇 분들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사에서 럭셔리 SUV의 조상으로 무쏘를 들었는데요. 왜 이 차를 빼먹었냐는 투정(?)이었죠.
그 분들은 이 차를 빼놓고 한국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역사를 말할 수 있느냐? 이 차는 오늘날 현대차 4륜구동 기술의 시발점이 되는 차이자 오늘날 싼타페와 투싼의 조상 격인 차라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네 바로 갤로퍼입니다. 

지금도 1세대 코란도 훼미리, 무쏘와 함께 한국 SUV의 전설 자리를 놓고 수많은 이들의 입씨름을 불러일으키는 차입니다.
1988년 정몽구 회장(당시 현대정공 사장)은 이른바 지프차라고 불리는 ‘4륜구동 자동차’를 개발할 것을 결심합니다.
당시 항공기, 공작기계 등 기계산업 분야에 주력하던 현대정공이 자동차, 그것도 4륜구동에 뛰어든 이유는 같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승용중심의 사업구조로 인해, 4륜모델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당시는 일명 포니정으로 불리던 故 정주영 명예 회장의 동생, 故 정세영 회장이 현대차의 경영을 책임지면서, 장자인 정몽구 회장과 정세영 회장의 본격적인 후계구도 경쟁이 시작될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정몽구 회장은 그룹의 근간인 자동차 부문에서 성과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죠.
이런 이유와 배경으로, 정몽구 회장의 4륜구동 개발 계획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발합니다.
당초 계획은 독자모델의 개발이었습니다.
‘J카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를 위해 1988년 현대차의 주요 인물들이 차출됐고 1989년부터 마북 기술연구소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어 완성된 시제차를 1990년 미국으로 보내 현지 소비자의 반응을 살폈죠.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성능ㆍ기술ㆍ디자인 면에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것입니다.
4륜구동 자동차는 일반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내구성이 중요한데 미국 시장에서는 혼다, 도요타 등 글로벌 유명업체들의 차량이 대거 경쟁을 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품질의 기대수준도 높은 상황이었죠.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결국 포기합니다.
대신 시장에서 검증된 업체의 4륜구동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해 완성도 높은 제품을 선보이자는 쪽으로 선회하게 되죠.
그래서 선택한 모델이 바로 일본 미쓰비시의 디젤 지프차량인 ‘파제로(Pajero)’였습니다.

파제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 렉서스 LS, 혼다 NSX와 더불어 일본의 3대 명차로 꼽히던 차였고 특히 악명높은 파리-다카르 랠리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모델이었습니다.
또 비록 미쓰비시의 면허생산 방식을 택했지만, 부품과 차체 개발은 현대 정공의 고유기술이 그대로 집약된 차로 기대를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갤로퍼의 생산을 통해 현대차가 4륜 구동 기술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계기도 됐었죠.
드디어 1991년 9월 16일. 갤로퍼 1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디젤 롱바디 모델이 먼저 선보이고, 11월에는 자동변속기 모델, 12월에는 터보 디젤엔진 롱바디 모델이 출시되죠.
시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출시해인 1991년 약 3개월 동안만 무려 3000 여 대 가까이 판매를 기록하며 이전까지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가 독점하던 4륜구동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킵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총 2만 4000 여 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륜 구동 시장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기록합니다.
차량의 외관이나 엔진은 기반이 된 파제로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는데요.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쌍용차 코란도, 아시아자동차의 락스타에 비해 디자인이나 엔진 성능면에서 차별화된 이미지를 가지는데 성공했었죠.
성능도 대단했습니다.
출시 당시 디젤 4기통 2476cc엔진은 73마력을 자랑했고 이후 터보차저를 얹어 81마력, 인터쿨러를 탑재해 101마력까지 힘을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특히 갤로퍼의 장점은 101마력의 출력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와 “힘이 좋다”는 것이 었습니다.
비포장길의 주행성도 우수했죠.
출시 초창기 당시에 갤로퍼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정공 측에서 7만km 가량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벤트를 두 번이나 펼친 것도 갤로퍼의 내구성에 대한 자신감이었죠.
이후 갤로퍼는 1994년 12월 19일, 누적 생산 10만대를 돌파하고 1997년 7월에는 20만대 판매를 기록합니다.
기존 4륜 구동 차량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된 이미지를 구사한 것이 주효했었죠.
이후 1993년 7월 기아자동차에서 스포티지를 출시하고 같은 해 8월 쌍용자동차가 무쏘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SUV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죠.
약 1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대차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갤로퍼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길로 사라집니다. 이후 테라칸이 갤로퍼의 후계자로 등장했지만...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갤로퍼는 분명 일본차의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모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차 4륜 구동 기술의 기반이 된 기념비적인 모델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뛰어난 내구성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도로에서 간혹 갤로퍼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길에서 갤로퍼를 발견한다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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