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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김탁환 “매일 아침 바다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아침마다 바다에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새벽에 자료를 보고 아침 6시부터 글을 쓰는데, 글을 쓸 수 없는 거에요. 감정이 복받치니까 울기도 하고. 눌러야 문장이 나오잖아요. 절을 했어요.”

소설가 김탁환(48)이 자꾸 멀어져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붙잡아 ‘기억의 마을’을 지었다. 그리고 그 앞에 비명을 세웠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신작 역사추리 소설 ‘목격자들’(전2권ㆍ민음사)은 세월호 사건의 고통스런 시간을 통과하며 낳은 뼛속의 통증을 간직한 소설이다.

그는 ‘기억의 마을’을 짓기 위해 8년 전 맹활약했던 명콤비를 불러냈다. 일명 백탑파 명탐정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꽃에 미친 남자’ 김진. ‘방각본 살인사건’’열녀문의 비밀’‘열하광인’에 이어 8년만에 백탑파 시리즈로 돌아온 작가를 5일 후암동 본사 헤럴드까페에서 만났다

”재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가나 공동체, 개인은 무얼 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싶었어요.“ 소설가 김탁환이 신작 소설 ‘목격자들’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조선시대 정조로 거슬러 올라가 새롭게 조명했다.

지난해 봄, 그는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쓰고 있었다. 오래 전 계획된 일을 차근차근 써 나가는 중이었다. ‘목격자들’의 백탑파들이 사건이 터지기 전, 청나라 연행을 꿈꾸며 풍류를 즐겼듯이 평온한 소설짓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데 없이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온 국민이 그랬듯이 하루종일 TV에 매달렸다. 찬 바다에서 건져올려질 생명을 고대하며 기도하고 한편으론 어이없는 부패들에 분노하며 거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한달, 그는 1년을 쉴까도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머릿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지어졌다.

“백탑파시리즈를 시작할 때, 영ㆍ정조 시대 사건들을 조사해 놓았거든요. 그 중 해양재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오버랩되는 거에요. 스토리가 지어지는데 한편으론 쓰는 게 두려웠어요. 물에 빠지지 않을까. 그래도 소설로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걸 놔두고 다른 걸 쓸 순 없겠더라고요.”

소설가 김탁환.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는 소설쓰기 전 철저한 준비로 유명하다. 충분한 자료와 준비를 갖춘 후 적당한 템포로 자연스럽게 언덕을 넘어가듯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후유증도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업은 예외였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듯이 집중해서 확 썼다“고 했다. 추리소설로서의 논리적인 전개와 감정적인 전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힘들었다.

“0도와 100도 사이를 오가는 기분이었어요. 이러다 미치겠구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은 정조 1780년 봄. 조운선 침몰이란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다.

다른 조창에서 출발한 조운선 스무척이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곳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난 것이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어지러운데 조운선과 2만 석의 세곡이 수장돼 정조는 큰 걱정을 한다. 관련자들을 불러 심문해도 별다른 죄를 찾지 못한다. 풍랑 때문이라고, 종종 있어 왔던 일이라고 보고될 뿐이다. 역사에서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된다. 

소설가 김탁환.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작가는 그 흐지부지된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명탐정 김진과 이명방을 통해 세곡이 모이고 조운선을 따라 어떻게 이동하며, 어디에 도착하고, 누가 책임자고, 어떤 이들이 쌀을 타 가는지 경로를 하나하나 파헤쳐 나간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고의로 배를 침몰시키는 것을 징계하는 법이 있어요. 일부러 배를 빠트리는 게 많았다는 얘기죠. 풍랑 때문인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는데 그렇게 해먹은 거에요. 정조 때도 못찾았는데, 시스템을 깊게 들어가본 거죠. 결론은 부패는 전부 다 짜야 되는거더라고요, 왕창 다 썩어들어간 거죠. ”

이 사건이 세월호 침몰의 총체적 비리와 비슷한데 그는 놀랐다.

“자료를 찾아서 읽는데 쇼크였어요. 배의 불법 증축, 과적, 선원들은 하나도 죽지 않은 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죠.”


소설 속 상황이 세월호 현실과 겹쳐지는 부분도 나중에 생겼다. 물에 빠져 죽은 소선의 승선자 중 차돌이의 어미 선영이 신문고에 고하기 위해 맨발로 한양으로 올라오는 애끓는 과정과 지금 세월호 가족의 팽목항에서부터 올라오는 3보1배가 닮았다. 소설을 쓰면서도 “이렇게까지야 하겠나” 했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현실에선 지지부진한 해결책을 소설에서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상한 게 ‘기억의 마을’이다.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을 지닌 이들을 모두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여 책으로 묶는 일이다. 중요한 이야기는 그림으로도 그려 남기는 것.

“재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가나 공동체, 개인은 무얼 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는 “세월호 조사위의 활동이 제대로 안돼 안타깝다”며 “지금 상황이라면 명탐정 김진이 와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5년 후에나 다시 재회할 줄 알았던 백탑파들을 다시 불러모은 그는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통해 계속 이들과 동행할 예정이다.

“현재 35권 정도 썼는데 60권까지 쓸 생각이에요. 역사소설은 거리를 두고 현재와 대화하는 거라 생각해요. 무얼 쓸 건지는 그때 그때 생각할려고요. 현재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거리를 두고 쓰는 거죠.”

몰입도가 높은 그의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 제작 1순위다. 오는 7월 발간될 ’조선마술사‘는 가을 추석 무렵 영화로도 나온다. 또 지난해 출간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도 CJ와 계약을 마친 상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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