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미(美)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죠.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시저)와 안토니우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왕, 클레오파트라입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빼어난 미인이었을까요. 그녀의 미모는 믿어 의심치 않는 신화처럼 전해지지만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나와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옆 얼굴이 새겨진 몇 점의 유물들이 전부거든요. 클레오파트라를 “모든 여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말한 카시우스 디오 마저도 사실 그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서기 2세기의 그리스 사료 편찬관입니다.
우선 그녀가 ‘미인형’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건 2000년 전에 제작된 동전들이 발견되면서입니다. 지난 2007년 영국 뉴캐슬대학의 연구팀은 한 은행 금고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은화 동전을 분석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동전에 새겨진 클레오파트라는 좁은 이마에 툭 튀어나온 턱, 매부리 코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전이나 화폐는 그 시대 지배자의 얼굴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 동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사진= 미켈란젤로가 그린 클레오파트라. 1534년 작품이다. |
사진=클레오파트라 시대인 기원전 51~30년 그리스에서 주조된 동전. 큰 매부리 코를 가진 클레오파트라가 살이 찐 목을 드러내고 있다. |
이 연구 이전에도 그녀가 150cm 남짓한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와 엉망인 치아를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은 있었습니다. 2001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클레오파트라의 비공개 유물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 모든 유물과 작품에서 그녀가 고혹적이거나 아름답게 묘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그녀를 미인으로 그린 작품은 대개 그녀의 미모에 대한 신화가 성립되고 난 뒤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반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발견된 유물은 다른 경향을 보였죠. 커다란 매부리 코와 살이 많이 붙은 목덜미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됐거든요.
자료와 기록에서는 어땠을까요.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기록합니다.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그녀를 가리켜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죠.
그래서 클레오파트라가 절세미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와의 대결에서 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모략에 가까운 평가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 같은 기록이 의도하는 건, 클레오파트라의 ‘대단한’ 미모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로마를 구했다는 겁니다. 이집트라는 동방과 비교한 서방의 우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가 깔려있는 셈인데, 역사가 승리자의 기록이기에 패배자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죠.
사진=클레오파트라 7세 부조(부분) |
사진=고대 유물에 남겨진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들에 근거해 만든 3D 컴퓨터이미지. 영국의 TV 프로그램 제작사 ‘아틀랜틱 프러덕션’ 제작. |
물론 그녀가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의 실력자로 부상한 카이사르의 연인이었고 천하를 호령한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 수 있었던 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녀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지성의 소유자였고 또 에티오피아어, 아랍어, 시리아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였거든요. 말 한마디에는 재차와 센스가 넘쳤다고 하니 상대는 무장해제될 수 밖에 없었겠죠. 어쨌든 두 사람을 사로 잡은 그녀는 영광과 패배를 함께 맛보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이집트도 로마의 속주로 전락합니다.
(*) “안토니우스의 아내 옥타비아는 클레오파트라보다 100배는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런데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다른 모든 것을 잊었다.” - 피에르 드 브랑톰의 ‘고상한 부인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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