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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박일한] 꽃분이네 계속 이대로 둘건가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배경인 ‘꽃분이네’가 권리금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라는 소식은 사실 그다지 놀랄만한 게 아니다. 서울 명동에서도, 강남 가로수길에서도, 이태원 경리단길에서도, 홍익대 등 웬만한 대학가 주변 상권에서도 늘 벌어지는 일이다.

상가가 인기를 얻게 되면 건물주는 임대료를 높이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임차인이 건물주의 갑작스런 요구에 우물쭈물하면 가차 없이 계약이 해지된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 보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온다. 

꽃분이네의 경우 중간에 ‘1차 임차인’이 끼어 임대료 뿐 아니라 권리금 인상까지 부담되는 상황이다. 1차 임차인은 건물주에게 점포를 빌려 재임대를 한 사람이다.

꽃분이네 가게가 뜬 건 영화의 흥행이라는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됐다. 더 일반적인 건 점포를 운영하는 임차인의 노력에 의해 가게에 뜬 경우다. 처음엔 임대료가 저렴해 들어와 새로운 음식이나 제품, 서비스를 개발해 상권을 활성화 시켜 놓았더니 어느 날 임대료가 과도하게 올라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나아가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권리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열심히 사는 자영업자들은 생계가 불안해 진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30%를 넘는다. 이 비율이 10% 전후인 영미 선진국보다 세 배 이상이고, OECD국가 중 가장 많다. 숫자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창업한 지 1년안에 망하는 자영업자가 전체의 80%를 넘는 건 이 때문이다.

도시 문화적 차원에서는 획일적 도시를 양산한다. 작지만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가게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일본 여행을 하면 수백년 이상 된 가게들이 지금도 영업을 하는 걸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모차르트 같이 역사 속 인물이 여기서 맥주를 마시고 갔다는 자랑을 들으면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부럽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왜 안 될까. 어떤 제도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선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함부로 계약을 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한다.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10년이상 주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의 경우 사실상 계약 갱신 요구권이 무제한이다. 어떤 방식이든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건물주가 ‘과도한’ 지대를 챙길 수 있는 권리를 규제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도 ‘권리금법제화 방안’, ‘계약갱신요구권 연장안’ 등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해 건물주의 재산권을 다소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무수한 ‘꽃분이네들’이 생계 걱정을 더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잘 마무리 됐으면 한다. 우리 역사가 오롯히 담긴 꽃분이네들이 계속 멸종되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길 바란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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