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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박용근]‘인터스텔라’와 다양성, 그리고 규제
지난해 말 영화 ‘인터스텔라’가 화제였다. 국내에서 큰 흥행을 거둬 1000만명 이상 관중을 동원했고, 영화 속 상대성이론, 블랙홀, 행성 간 여행 등 과학적 궁금증을 설명하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들이 줄을 이었다.

천체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킵 손 교수가 영화 과학 자문역을 맡아, 제작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 구현된 블랙홀 영상은 원자물리학을 전공한 미술팀장의 작품이다. 세 시간동안 일반인들에게는 자칫 난해할 수 있는 내용이 오히려 많은 관객들에게 큰 지적 자극을 주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기념비적인 영화다.

미국의 힘은 사회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인터스텔라’ 같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듯,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는 그 기반이 매우 탄탄하고 광범위 하다. 유행이나 시류를 따라가지 않고,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본인이 흥미를 느낀 분야에서 평생을 바쳐 매진해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전문가 집단이 바로 미국을 움직이고 수십년동안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 위치에 있게 한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전문가 집단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사회 경제를 움직이는 힘으로 유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육성된 전문가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이 됐을 때, 그리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도와 발상을 통해 혁신이 생겨났고, 미래가 만들어져 왔다.

이러한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성과 전문가의 수준은 단순히 투자를 한다고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 5년간 몇백억을 투자하면, 몇 %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 분야와 달리, 수십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가꾸어야 할 생태계가 과학기술 분야다.

‘인터스텔라’와 비슷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단기간에 돈을 투자하고, 감독, 과학 자문, 미술 감독들이 몇 달간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면 아류는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평생을 들여 각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과학기술은 태동부터 성장까지 보통 10년이 소요되고, 최소 3세대 이상의 학문적 세대가 육성돼야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마음 놓고 한 분야에서 매진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바로 다양한 규제 때문이다. 정부 연구비를 받는 과학기술의 성과가 공무원들의 실적과 승진과 연계 돼 있고, 규모가 큰 국가 연구 사업의 경우에는 한 정권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부 연구비가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상향식보다, 정부에서 이런 주제의 연구를 하라는 하향식로 이뤄진다.

또 단기 성과만을 강조하다 보니, 현재 외국에서 유행하는 연구 주제를 따라하는 것이 유리하며, 몇 년마다 연구 주제를 바꿔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더욱이 최근 정부는 소위 돈이 되는, 창업이나 사업화가 가능하고 사화 경제 파급 효과가 뚜렷한 연구 위주로 지원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며칠 전 레이저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리학자 찰스 타운스 박사가 타계했다. 1950년대 말 최초로 구현된 레이저는 그 이후 인류가 빛을 다루는 방식을 바꿔 놓았고, 의료, 과학, 통신, 국방 등 거의 모든 기술 장비에 사용된다. 올해 레이저 제품 세계 시장 규모는 10조원에 달하고, 레이저 관련 시장은 그 몇 배 규모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타운스 박사는 생전 세미나에서 직접 이런 이야기를 했다. “레이저를 개발할 당시에는 이걸 가지고 어디에 사용할 지 몰랐다. 응용 분야가 없을 줄 알았다”라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고, 과학기술 생태계를 육성하지 않는다면, 50년 뒤 미래 사회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핵심 원천 기술은 우리나라에게 나오기 힘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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