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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장 “고객만족의 최면에서 벗어날 때”
-‘감정 노동‘ 오래전부터 주목
-인간중심 사회 복원이 정답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마음을 다치지 않는 인간관계란 없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붙이려다 상대의 가시에 찔리고야 마는 고슴도치처럼, 사회적 동물임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자율적인 선택이 아닌 사회적 강제에 의해 이뤄진다면 ‘감정 노동’이라는 사회 문제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난달 28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김태흥(58) 감정노동연구소장은 한국에서 감정 노동이 하나의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전부터 그 심각성을 깨닫고 주목해 온 인물이다.

그가 감정노동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부터. 광고대행사에서 일해온 그는 업계 현실로부터 누구보다 절실히 감정노동의 문제를 경험했다.

“26년간 일하면서 열세번 직장을 옮겼어요. 계약이 끊기면 한 순간에 팀 전체가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온갖 갑질 고객들로부터 수모를 참아내야 하죠. 나중에야 그것이 ‘감정 노동’이라는 것을 알면서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김 소장은 백화점 갑질 모녀, 대한항공 ‘땅콩 회항’, 아파트 경비원 자살 사건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의 배후엔 감정 노동이 있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최근 큰 공분을 일으킨 보육원 아동 폭행 사건도 그렇다는 것이다.

“해당 교사는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이미 심리적으로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보육원 원장, 학부모, 아동에게서 온갖 감정노동의 혹사를 당한 스트레스를 폭탄처럼 안고 있다가 자기보다 약한 개체인 아이에게 터뜨려버린 것이죠.”


김 소장은 이런 행동들이 ‘심리적 서열’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분석한다. 인간 역시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서열을 의식하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서열이 낮아서 모멸감을 느끼면 심리적 서열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신보다 약한 개체에게 이른바 ‘갑질’이나 ‘진상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경우 외국에 비해 감정노동의 정도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그 원인을 ‘고객만족’에 대한 오해에서 찾았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이 아닌, ‘친절’과 같은 부가적인 요소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고객을 응대하는 종업원에게 모든 스트레스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세월호처럼 안전이라는 본질적인 요소에 결함이 있는 배가 정부로부터 고객만족 ‘우수’ 등급을 여러차례 받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 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노동관리사’ 자격증을 만들었다. 당초 기업의 인사ㆍ교육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자격증이었지만, 교수ㆍ프리랜서 강사 등 관련 문제에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느덧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격을 땄다.

김 소장은 “우리 사회는 고객만족이란 최면에 걸려 있는데 고객만족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다시 고민해 봐야 해요. 욕쟁이 할머니집 보면 전혀 친절하지 않은데도 장사가 잘 되잖아요. 인간중심의 사회로 바뀌는 것, 그게 우리 사회도 기업도 사는 길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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