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반전에 반전…‘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고의 재구성
[헤럴드경제=서경원ㆍ서지혜 기자]10일 새벽 1시 30분. 화물차 운전일을 하는 강모(29)씨는 임신 7개월째인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손에들고 늦은 퇴근길을 재촉했다.

강 씨는 강원도의 한 사범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내와 함께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아내가 임신하자 화물차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뺑소니 사망 사건에서 부터 도주, 차량 흔적 제거까지=4월이면 태어날 딸 아이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난데없이 덮친 윈스톰 차량에 부딪힌 강씨의 몸은 허공으로 붕 떴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아스팔트 바닥에 강씨의 몸이 크림빵 조각처럼 산산히 부서져 떨어졌다.

술에 취해 귀가하던 허모(37)씨가 낸 뺑소니 사고였다.

그는 윈스톰 차량으로 강씨를 치고도 멈추지 않았다. 동료들과 소주를 잔뜩 마신 뒤였다. 혼자 마신 소주만 4병이 넘었던 터라 냉정하게 사리를 분별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고를 낸 허씨는 골목길로 핸들을 틀었다.

취중에도 큰길로 내달렸다가는 CCTV에 찍혀 범행이 들통 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나흘 뒤 인터넷을 통해 접한 뉴스로 자신이 친 게 사람이었다는 것이 확연해졌지만, 당장 자수할 생각은 없었다.

불안해하면서도 그는 평소와 다름 없이 행동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직장도 정상 출근했다.

마음에 걸렸던 윈스톰은 사고 발생 열하루가 되던 지난 21일 음성 부모 집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는 동료와 충남 천안의 정비업소에서 부품을 사, 사고 당시 망가진 부분을 직접 수리했다.

▶혼선 거듭하는 수사=피해자 강씨가 ‘크림빵 아빠’로 불리며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지만, 수사의 진전은 고사하고 단서조차 나오지 않자 경찰은 당황했다.

사고 직후 유가족은 자동차관련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주변 지역의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범행 차량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경찰 수사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같은 유가족의 노력으로 ‘보배드림’ 등 자동차관련 동호회를 중심으로 ‘네티즌 수사대’가 꾸려졌다. 이들은 CCTV 속 차량에 대한 정보를 동원해 추적을 시작했다.

여론이 확산되자 경찰청장까지 나서며 뺑소니범 검거를 독려하자 이례적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인원과 예산도 확충됐다.

사고장소 인근의 CCTV 등을 분석한 경찰은 BMW 승용차를 용의 차량으로 지목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용의차량이 BMW나 렉서스, 뉴제네시스 등과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28일 CCTV정밀 판독결과 정확한 차종과 차량번호 판독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자칫 수사는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인터넷 댓글이 결정적 단서= 수사 장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던 이 시각 인터넷은 또 한번 위력을 과시했다.

차량등록사업소 공무원 A씨는 어느 날 한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근무지 부근에서 발생한 ‘크림빵 아빠’ 강씨의 비극을 다룬 뉴스를 읽고 있었다.

CCTV 화면이 흐릿해 용의 차량의 차종조차 특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에 시선이 꽂혔다. 반사적으로 도로 쪽을 바라보니 CCTV가 눈에 들어 왔다.

그는 기사에 “우리도 도로변을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반응이온 것은 지난 27일이었다. 경찰이 이 차량사업소를 찾아온 것이다. 사고 발생 17일 만의 일이었다.

갈팡질팡하던 경찰의 수사에 아연 활기가 돌았다. 차량등록사업소에서 가져온 CCTV 파일에 윈스톰이 포착됐다.

윈스톰의 운행 시간과 경로 등 퍼즐을 하나씩 맞춰 나가자 두말할 것 없이 윈스톰이 유력한 범죄 용의 차량이었다.

경찰은 사고 발생 19일 만인 29일 강씨를 치고 달아난 차량이 BMW가 아니라 윈스톰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경찰이 헛다리를 짚는 것을 보고 완전 범죄를 기대했을지 모를 허씨가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순간이다.

이런 허씨를 아내가 설득하기 시작했다.

‘CCTV 분석 결과 범행차량이 윈스톰으로 밝혀졌다’는 보도를 보고 수사망이 좁혀져 오는 것을 직감한 허씨의 아내는 29일 밤 8시40분께 112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사고를 낸 것 같다”고 신고를 했다.

이에 청주 흥덕경찰서는 허씨의 아파트로 경찰을 급파, 검거를 시도했지만 이미 허씨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떠난 후였다.

경찰은 허탕을 치고 다시 돌아갔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남편을 다시 찾아 자수할 것을 강권했고, 남편도 끝내 아내의 말을 수용해 결국 자기 발로 경찰서 후문을 통해 강력계로 향했다.

▶반전에 반전, 거룩한 용서가 분노로...=자수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뛰어 온 피해자 강씨의 아버지 태호(58)씨는 허씨을 보자 뜻밖의 태도를 보였다.

이번 사건으로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을 생각한다면 돌을 던져도 시원치 않을텐데 허씨를 향해 오히려 “잘 선택했다. 자수한 사람을 위로해주러 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허씨가) 잡히지 말고 자수하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며 “자수 소식을 듣고 온 식구들이 모두 박수를 보냈다”고 밝혔다.

강씨는 말 뿐 아니라 얼굴 표정에서도 원망이나 슬픔보단 허씨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씨는 “원망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며 “그 사람(허씨)도 한 가정의 가장일텐데, 우리 애는 땅속에 있지만 그 사람은 이제 고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은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정말 (자수를) 잘 선택했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출산을 3개월여 앞두고 창졸간에 홀로 된 며느리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도 드러냈다.

강씨는 “우리 며느리는 마음이 단단해서 (피의자) 가족도 보듬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강씨의 거룩한 화해는 곧 분노로 바뀌었다.

자수한 사람을 위로해주러 왔다“며 따뜻한 용서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였지만 하루 뒤인 30일 태도는 180도 달랐다.

경찰 브리핑을 통해 알려진 허씨의 사고 이후 행적이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그의 진술을 언론 보도로 접하면서 허씨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는 30일 오전 흥덕경찰서 브리핑이 끝난뒤 사건 현장을 찾았다가 취재진을 만나 사고 순간 사람을 친 줄 몰랐다는 허씨의 진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1m77㎝의 거구(강씨를 지칭)가 빵봉지를 들고 걸어가는데 치었다고 가정할 때 사람이라고 보겠습니까, 강아지로 보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진짜 잘못했다면 솔직했으면 좋겠다”고 허씨를 질타했다.

그가 하루만에 이렇게 화를 낸 것은 허씨가 “사고 당시에는 사람을 친 줄 몰랐다”고 말하고, 사고 차량을 부모의 집에 숨긴 뒤 부품을 구입해 직접 수리하는 등 범행 은폐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수 역시 허씨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인의 설득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밝혀진 것도 그를 화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태호씨는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며, 용서할 준비는 이미 다 돼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제발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