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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더 익혔어야 했던 ‘대통령의 시간’
국가 최고지도자의 판단과 행동은 하나 하나가 역사적 행위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回顧錄)은 개인 자격의 자서전과는 다르다. 그 자체가 역사의 기록물이어야 하고 다음 세대의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 수반들이 회고록 집필을 당연하고도 신성한 의무로 여기는 이유다.
실제 깊숙이 숨겨져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회고록을 통해 밝혀지기도 한다. 흐루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한국 전쟁은 북한의 김일성,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세 나라 지도자의 합작품”이라고 회고록에서 고백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제2차 세계대전’은 회고록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을 진두지휘한 경험과 고뇌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냈다. 더욱이 자신의 기억 뿐 아니라 각종 문서와 증언을 토대로 객관적 서술에 충실함으로써 문학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갖춘 명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처칠은 이 책으로 195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도 많은 대통령들이 회고록을 집필했다. 지금까지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역사 앞의 고백이 아니라 전ㆍ현직 대통령에 대한 독설과 비리 폭로로 정치적 풍파를 불러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마디로 너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정보정치에만 골몰했다”고 독설을 퍼부었고, 노 전대통령은 회고록에서 “YS에게 대선자금 3000억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대개 이런 식이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과도한 욕심이 실패와 오류를 낳아 참여정부가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는 감추고 싶은 ‘아픔’도 솔직하게 서술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으로 미루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좋은 점수는 받기 어려울 듯하다. 대부분 내용이 정치권 공세에 대한 반박과 자화자찬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이번 회고록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아무래도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에 대한 MB의 언급일 것이다. 자원외교는 당장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간 ‘살아있는’ 이슈다. 4대강 사업은 여전히 초강력 폭발력이 잠재된 사안이다. 방산비리는 검은 커넥션의 상당부분이 실체를 드러내는 등 전방위 수사가 한창이다.
물론 이해 당사자격인 MB로서는 할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싶은 말을 다 쏟아낼 상황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의 너무 속속들이 까발린 것도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좋지않다.
당장 정치적 불이익이 있더라도 ‘이젠 말할 수 있다’고 할 때가 반드시 온다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다. “기억이 멸실되기 전”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의 시간’이 제 맛을 내려면 더 익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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