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깊은 상처를 보듬는 김경주의 시극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인 김경주가 시극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열림원)를 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이 흘러간 사랑을 회상하며 읊던 대사를 차용했다. 겉으론 상처가 아물었지만 여전히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한 그런 시간의 얘기다.

눈 내리는 밤, 버려진 바닷가의 작은 파출소에 하반신인 고무 튜브를 길게 늘어뜨린 김씨를 등에 업고 파출소 직원이 등장한다. 바다로 기어가던 김씨를 파출소 직원이 발견해 업고 온 것이다. 둘은 담담히 얘기를 나눈다. “바다로 기어가면 어떻해?” “눈 때문에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다보죠.” “못된 사람들, 밟고 지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하늘에 물고기들이 날아다녔어요.” “죽으려고 했구나.” “물속에서 종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물고기들의 울음소리야.”


거리의 사람들이 손을 밟고 지나가고 엄마도 아내도 떠난 김씨의 얘기는 처참하지만 낮게 가라앉아 있다. 파출소 직원 역시 남모를 아픔이 있다. 그에게는 자폐인 아이가 있었고 어느날 집을 나간 아이는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아내마저도 생을 포기했다. 입김으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녹여내는 둘의 얘기가 길어지면서 입장은 묘하게 바뀐다. 업고 온 김씨의 잘린 무릎에 파출소 직원이 눕고 상처 투성이 둘은 이내 서로의 온기에 기대 껴안은채 고요 속으로 잠든다.

작가는 저마다의 아픔을 생으로 거칠게 드러내기보다 운율로 감싸 부드럽게 변화시킨다. 독하고 날카롭게 삶의 부조리에 날을 세우는 언어보다 시적인 언어가 더 깊은 울림이 있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김경주 지음/열림원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