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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만개 부속품이 사람 장기처럼 움직여…차는 영물(靈物)이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3만개의 부속품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영험한 물건입니다. 마치 인간의 내장기관과도 같죠. 현대문명이 만들어 낸 기계들 중 이렇게 많은 부속을 갖고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차를 10년 정도 몰면 주인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차는 기계를 넘어선 그 무엇입니다.”

통쇠를 그라인더로 갈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쇳가루 산수화가’ 김종구(이화여대 교수ㆍ52) 작가의 말이다. 이 조각가는 별안간 왜 ‘자동차 영물론’을 펼치게 됐을까.

***사진 1 : ‘자동차와 시, 서, 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한 전시에서 뭉쳤다. 잘나가는 중견 작가부터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까지 모두 동일한 액수의 ‘아티스트 피(Artist feeㆍ작가 보수)’를 받고 말이다. 김종구, 이용백, 박선기, 김병호, 이광호, 김진우, 양민하 등 총 14명의 작가들을 현대자동차가 한 데 모았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부터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라는 캠페인을 벌여 고객들로부터 자신의 삶과 함께 해온 추억의 자동차에 대한 사연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예술작품으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을 선정, 2점의 작품(1점은 사연자에게 기증)을 제작하게 했다. 그 결과물로써의 전시가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라는 동명의 타이틀로 오늘부터 2월 17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알림터 알림 1관에서 열린다.

전시가 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석달. 하지만 정작 작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달 남짓에 불과했다. 국내ㆍ외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촉박한 시간을 쪼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셈이다. 

***사진 2 : 김종구 작가

자동차에 얽힌 사연을 풀어낸 전시여서인지 일단 각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의 사이즈부터가 만만치 않다. 대형 사이즈의 조형 작품들이 거대한 전시공간을 파티장처럼 떠들썩하게 메우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부터 현대미술 작가에 대한 전시 후원, 브랜드 문화공간(강남 도산대로 현대모터스튜디오) 설립 등 공격적인 문화예술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대대적인 전시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다소 상업성 있는 기획 전시에 모은 것은 홍소미(아트플레이스 대표) 큐레이터의 힘이 크다. 

***사진 3 : ‘포터를 위한 기념비’

개막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광고 캠페인에서 파생됐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전문 광고회사인 포스트비쥬얼이 이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를 통해 마케팅을 하려던 것이 반응이 좋아 전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면서 “모든 관람객들이 즐겁게 보고 즐기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여한 3명의 대표 작가들을 만나 이번 전시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궁금했던 근황 등을 물어봤다. 

***사진 4 : 이용백 작가

▶김종구 작가 ‘자동차와 시, 서, 화’

김종구 작가는 ‘참외향 가득한 트럭’이라는 사연을 ‘자동차와 시, 서, 화’라는 작품으로 제작했다. 참외 장사를 했던 사연자 아버지의 1990년대 포터 트럭을 갈아 서예와 조형작품으로 표현했다. 가루로 갈고 남은 포터의 골조 표면에는 다시 쇳가루를 뿌리고 녹물을 냈다. 기존 작업에서 보여줬듯, 바닥에 쌓인 쇳가루들이 서로 다른 높이의 레이어를 이룬 것을 바닥에서 촬영해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었다. 포터의 앞 유리창에 이 산수화가 비친다. 차 유리에 종이 스크린을 붙이고 뒤쪽에서 프로젝션을 이용해 산수화 영상을 쏘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 동안 작업하느라 애를 먹었다. 쇳가루 가는 작업에 나 빼고도 3명의 인원이 더 투입됐다. 탱크를 깎아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자동차에 대한 작업 의뢰가 들어와 쉽게 응했다. 폐차의 개념을 넘어 내 삶 속에서 함께 했던 차의 이야기를 기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자동차에 염(殮)을 하듯 말이다. 사람들인 기계가 녹슬면 하찮아졌다고 생각하고 버리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안에는 시간의 축적이라는 가치가 새롭게 생겨난다. 쇠는 인간의 정서와 배반된 공업용 재료이지만 녹이 슨 쇠는 자연의 색깔을 닮았다. 산화의 흔적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진 5 :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이용백 작가 ‘포터를 위한 기념비’

설치미술가 이용백(49)은 ‘일요일의 택배’라는 사연을 받아 ‘포터를 위한 기념비’를 제작했다. 10년동안 택배업에 종사했던 사연자의 99년형 포터를 위한 ‘기념비’다. 작품 앞에는 포터의 애칭이었던 ‘흰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사연자에게는 ‘엔젤 솔져’ 오디오 작품을 기증할 예정이다. 포터의 계기판은 그대로 남기고 오디오는 아예 새 것으로 바꿨다. 이태리 앰프 브랜드 ‘오디슨(Audison)’을 썼다.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인 이용백 작가는 베니스 이후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전시를 열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념비는 보통 위대한 사람들의 업적에 헌정한다. 포터는 택배업 노동자의 삶 그 자체였다. 그 가치를 위대한 업적에 비견해 기리고 싶었다. 차체를 분해시킨 후 석고 캐스팅을 떠 기념비 모양으로 다시 쌓았다. 엔젤 솔져의 오디오는 새 것으로 사서 끼웠다. 선물하는 건데 음악이 잘 나와야 하지 않겠나. 블루투스도 돼야 하고…. 오디오 설치만 300만원 가량 들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폭스바겐 파사트 신차 발표회였다. 이런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귀족주의를 깰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올해에도 해외 두곳에서 중요한 전시를 준비 중이다. 하나는 상하이에 새로 생기는 뮤지엄 개관전에서 한ㆍ중ㆍ일ㆍ인도 작가 그룹전을 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 뮤지엄에서 여는 그룹전이다. 모두 하반기에 열린다. 한국에서 전시를 왜 안하냐고? 재미가 없어서….”

***사진 6 : 박선기 작가

▶박선기 작가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나일론 줄에 아크릴 비즈를 매다는 ‘집합체’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박선기(49)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과는 조금 다른 작업을 선보였다. 한국구화학교 음악 선생님이 보낸 ‘행복한 통학버스’라는 사연을 받아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구화학교는 청각 언어, 지적ㆍ자폐적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수화 대신 입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도록 훈련한다. 그 학생들의 통학버스인 38인승 ‘에어로타운 터보’가 이번 작품의 소재가 됐다. 통학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형상화한 부조 작품이다. 사연자에게는 스쿨버스 좌석 안전벨트를 연결해 스크린으로 만든 ‘사랑벨트’를 기증할 예정이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38인승 통학버스를 탄다.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 가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라더라. 학교 버스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세상과의 불통, 단절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스쿨버스는 아이들을 행복한 세상과 이어주는 소통의 창구다. 사랑벨트에는 그런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고 싶은 의미를 담았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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