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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미술 어설프게 알면 독이 됩니다”
-제약회사 사옥을 갤러리화…어진 안국약품 대표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약학(藥學)을 전공하지 않은 게 제약회사 경영에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어설프게 알면서 지시하면 오히려 독이 되죠. 갤러리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진(51) 안국약품 대표이사 사장은 서울 대림동 안국약품 사옥 1층에 갤러리AG를 운영하고 있다. 영등포구, 동작구, 구로구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산업시설 집약단지이자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 지역에서 올해로 8년째 문화예술 전시공간을 운영하며 근로자들, 주민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2만명 넘는 관람객들이 갤러리AG를 다녀갔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인근에 영등포구청이 운영하는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등이 있지만 기업이 운영하는 비영리 전시공간은 이곳이 유일하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에 참여하고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한국메세나협회(회장 박용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ㆍ위원장 권영빈)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안국약품은 눈영양제 ‘토비콤’을 만드는 회사로 대중에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매출의 90%는 병원 처방약에서 나온다. 이비인후과에서 기침 가래 환자들에게 지어주는 진해거담제 ‘시네츄라’가 바로 이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다.

올해로 56주년을 맞은 중견 제약업계를 이끄는 어진 사장은 스스로 “제약ㆍ바이오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어 사장은 1998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안국약품의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어준선(78)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35세의 나이로 업계 최연소 사장에 올라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경제ㆍ경영을 전공하고 대신증권 일반 영업부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제약업계에 뛰어들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잘 모르고 시작한 제약인지라 처음엔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어설프게 알고 지시하면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철저하게 경영자의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하는 어 사장에게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이론적으로는 모르고, 보는 것만 좋아하니까 전적으로 (큐레이터에게) 맡길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작가 선정을 잘했는지, 갤러리 예산은 잘 썼는지, 관객 호응은 좋았는지만 챙기면 되는 거죠. 만약 미술을 잘 알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 편향된 전시를 했을 겁니다.”

미술을 모르는 갤러리 주인이기에 갤러리와 관련된 모든 일은 전적으로 전시 기획팀에 맡긴다. 갤러리에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2억여원 정도. 기획팀은 이 예산으로 신진작가 공모도 하고 전시 지원도 한다. 현재까지 총 32회의 공모전과 27회의 기획전을 치렀다. 회화, 사진, 조각, 그래픽아트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난해 새해 기획전 때 선보였던 중견 목공예작가 정희석의 작품은 아직도 갤러리AG 한 중앙에 놓여져 있다. 200년 된 북미산 월넛으로 만든 목재 테이블이 중후한 멋을 뿜어낸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갤러리AG의 올해 신년 기획전 테마는 ‘개시개비(皆是皆非)’. 이이남(45)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과 박병춘(49) 작가의 자연풍경 회화 작품이 어우러진 전시다. 개시개비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주창한 화엄사상의 키워드. ‘어떤 입장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단다. 이기와 독선으로 분열된 한국사회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는 화합의 메시지다.

보수적이고 딱딱한 제약회사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보려고 시작했던 갤러리가 이 지역 근로자들과 직원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준 것은 의외의 보람. 문화예술 경영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부담스러워하는 어 사장이지만 올해에는 갤러리 운영에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좀 더 의미있는 갤러리 공간으로 한 단계 레벨을 높이려고 합니다. 다문화 가정이나 소외된 가정의 학생들을 초대해 작가와의 접점을 넓히고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 고민중입니다.”

/amigo@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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