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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거장·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로 거론되는 우리 시대 거장 코맥 매카시의 소설 ’선셋 리미티드‘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뉴욕 흑인 게토에 자리잡은 공동주택 건물의 어느 방안, 크롬 의자와 플라스틱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다. 한쪽에 몸집이 큰 흑인이, 다른 의자에는 조깅 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중년 백인 남자가 앉아 있다.

흑인이 묻는다. “그래 교수 선생, 내가 선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백인이 말한다. “왜 댁이 뭔가를 해야 하는 겁니까?”

자신의 생일날 달려오는 열차에 목숨을 버리기로 한 대학교수가 그를 구해준 흑인을 대하는 태도는 의외다. 소설은 둘의 대화만으로 진행된다. 아니 실랑이라 해야 할까. 


교수가 자살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믿었던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그는 ‘문화적인 것, 책과 음악과 예술, 뭐 그런 것들’이 가치있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서구문명의 도덕적 타락이 그 믿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신의 존재도 믿지 않고 우울증에 친구도 없는 교수가 바라는 건 내세가 없는 완벽한 죽음이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열차에 뛰어든 교수를 구한 흑인은 삶을 포기하려는 교수를 설득한다. 그는 살인죄로 교도소에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신을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모든 일에 신의 뜻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둘의 대화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빛과 어둠, 행복과 고통, 환상과 현실, 유신론과 무신론 등으로 확장되며 서로 상반된 생각을 펼쳐나간다. 작가는 둘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말장난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 ’여름을 삼킨 소녀‘ 역시 특별한 장소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그날, 나는 난생 처음 유치장에 갇혔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간, 넬레는 이 시간을 1994년 여름에 빗대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당돌한 소녀 셰리든의 열다섯번째 여름은 경찰과의 추격전으로 시작된다. 지루하고 고된 농장일과 엄격한 집안 분위기를 벗어나 사소한 일탈을 벌인 게 엄청난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이 일로 외출을 금지당하고 좋아하는 피아노마저 칠 수 없게 된 셰리든은 양어머니의 눈을 피해 더 깊고 은밀한 일탈을 시작한다. 잘 생긴 계절노동자 대니, 학교의 인기남 브랜던, 그리고 작가와 로데오 챔피언까지 성적 일탈과 풋풋한 연애 사이에서 셰리든은 생애 강렬한 시기를 지난다. 그러던 중 양어머니의 동생 캐럴린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오래된 가족의 비밀을 알면서 충격에 쌓인다. 넬레의 긴장과 활력이 넘치는 문체가 시선을 잡아 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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