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디지털시대에 풀어놓는 아날로그 이야기보따리
할머니 무릎 베고 듣던 옛날얘기처럼
얼굴맞대고 온기 느끼며 듣는 이야기
‘모스’ 공연 통해 쌓인 3000여편 중
흥미진진한 50편 동명의 책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감동은 기본
평범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



한번은 들었음직한 ‘이야기주머니귀신’은 이야기의 속성을 알기쉽게 들려준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큰 자루 속에 이야기를 모두 집어넣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꽁꽁 묶었다. 소년이 장가를 들게 되자 자루 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 귀신들이 모여 독이 든 물, 독이 든 과일, 독이 있는 뱀으로 변해 소년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귀신들이 하는 얘길 들은 하인이 소년을 쫒아가 물과 과일을 못먹게 하고 독사를 제거해 소년을 구했다는 얘기다. 이야기는 흘러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할머니의 무릎팍에 기대 듣던 아득한 옛날이야기, 시골 마당에 둘러앉아 누군가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은 인간이 이야기의 동물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디지털 시대에 스토리의 힘은 더 강력하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는 순식간에 지구촌으로 퍼진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을 아날로그식으로 재연해 성공한 이들이 있다. ‘나방’이라는 뜻의 스토리텔링 이벤트 ‘모스(moth)’다. 소설가 조지 도스그린에 의해 1997년 첫발을 내딘 모스 공연은 뉴욕의 그의 집 거실에서 처음 열렸다. 얼굴을 맞대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누군가의 얘기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소문이 나면서 모스는 이후 이후 더 큰 무대로 장소를 옮기고 도시 전역으로 확대됐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가 3000여개. 이 중 50개를 추려 책 ‘모스’(북폴리오)로 나왔다.

이 이야기는 일상적 범주를 벗어나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깨달음, 감동을 공통으로 깔고 있다.

#32살의 막 개업한 조지 롬바르디 박사에게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상대방은 자신을 세계적 인물이자 노벨상 수상자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한 뒤, 그 수상자가 지금 바이러스성 출혈열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수상자는 다름아닌 테레사 수녀. 롬바르디는 영화 속 ’수송작전‘처럼 이틀만에 캘커타로 날아간다. 수녀는 패혈성 쇼크상태로 상태가 나빠져가고 있었다. 롬바르디는 바이러스 감염을 원인으로 보고 심박조율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교황의 심장전문의는 의견이 달랐다. 결국 인도의사들은 롬바르디를 선택했고 심장조율기를 떼내는 처치를 하게 된다. 롬바르디는 꼼짝도 않는 도관을 떼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다 막판에 기도를 올린다. 테레사 수녀를 지켜달라고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것. 그러자 팽팽했던 도관이 느슨해져 뽑아낼 수 있었다며, 이 일로 수녀들의 록스타로 떠오르게 된 얘기를 끝냈다.

#헤밍웨의 친구 호치너의 투우 얘기는 유쾌하다. 편집자로서 헤밍웨이와 처음 만나 절친이 된 호치너는 1995년 여름, 헤밍웨이의 제안으로 스페인 당대 최고의 투우사 도밍긴과 안토니오 오르도네스의 투우 경기를 관람한다. 순회경기 도중 둘 다 친분이 있는 투우사 안토니오가 같이 식사를 즐기다 즉석 제안을 했다. 호치너를 자신의 소브레살리엔떼(예비 투우사)로 쓰기로 한 것. 헤밍웨이까지 부추기며 안토니오의 투우옷을 입고 경기장 투우사로 나선 호치너. 흘러내린 망토가 황소를 자극해 목숨이 왔다갔다한 순간, 안토니오의 연속찌르기가 성공해 겨우 빠져 나온 얘기는 흥미롭다. 호치너의 일일 매니저로 나선 헤밍웨이의 유머러스한 조언과 격려, 호쾌한 남자들의 무용담이 재미있다.

#비현실적인 얘기들도 있다. 18년간 감옥에서 사형수로 산 데이미언 에컬스 얘기다. 감방에 들어간 첫날, 일명 환영식이 치러졌다. 간수들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무자비한 구타를 가한 것. 쇠창살에 묶어놓고 경찰봉으로 때리고 굶기고 갖은 고문이 18일간 이어졌고, 결국 교도소안에 그 일이 알려지게 된다. 미사를 위해 교도소를 찾은 가톨릭 사제의 귀에 얘기가 들어갔다. 사제가 언론에 알리겠다고 나서자 그를 일반감옥으로 옮긴다. 기막힌 사연은 이어진다. 그에게 씌어진 죄명은 악마 숭배의식을 위해 어린아이 셋을 죽였다는 것. 누군가의 증언을 바탕으로 창고에 가두고 진술을 받아내려했다. 감옥에서 반드시 누군가 잘못을 바로 잡아 주겠지 생각했지만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만다. 여러 차례의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와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때쯤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아칸소 대법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죄를 인정하면 재판을 받지 않고 공개적으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는 앨퍼드 협정 제안을 받아들여 그는 풀려나게 된다. 그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는 사실이 그를 살렸다고 말한다.

브루나이 왕자의 20명의 여자 중 한 명으로 지낸 하렘 생활, 포커 챔피언 애니 듀크의 22억짜리 패, 르윈스키 스캔들로 대통령 탄핵청문회가 준비중이던 때 술로 밤을 지새운 대변인이 대통령 전용기를 놓친 사건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평범한 인생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은 이야기들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신기한 이야기의 세계속으로 이끌며 상상을 자극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