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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집서 혹시 내 손주도…” 친정 엄마들도 냉가슴
손주 못돌봐주는 외할머니들…“애들 손찌검 당하면…”자책


대전에 사는 강모(63ㆍ여) 씨는 얼마 전 TV 뉴스를 보다가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네 살배기 원아를 손으로 후려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수원에 사는 세 살짜리 외손녀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강 씨는 10년 전 남편을 여의고 대전에 혼자 살다 장사를 하는 둘째 딸을 돕기 위해 2년 전 딸네 집인 수원에 올라가 살기 시작했다. 딸은 출산 3개월만에 남편을 따라 식당운영을 도와야 했고, 딸과 사위가 집을 비운 사이 외손녀를 맡아주는 게 강 씨의 몫이었다.

낮에 갓난아기를 혼자 돌본다는게 버거운 일이었지만 외손녀가 생긋 웃는 얼굴만 보면 다시 힘이 솟곤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을 때부터 점점 대전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무릎과 허리의 통증도 심해졌다. 그때 쯤 몸이 힘들어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신장 사구체신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무리하면 신장 투석까지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딸과 상의 끝에 결국 대전으로 도로 내려오게 됐다.

이렇게 해서 강 씨의 외손녀는 동네 어린이집에 맡겨지게 됐고, 강 씨는 고향 집에 내려와서도 외손녀의 얼굴이 아른거려 종종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번 어린이집 사건을 뉴스로 보게 됐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책감도 들었다. 자기가 못 키워준 탓에 외손녀가 어린이집에서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내가 처녀 때 남편하고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었는데 시집 오고 나서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며 “그래서 내 딸만큼은 사회생활을 계속 하도록 해야겠다 싶어 손주 키우는 걸 도왔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몸이 성치 않아져서 손주를 다른 데에 맡기고 왔는데 어린이집 뉴스를 보고 나서 딸에게 그렇게 미안해질 수가 없고 어디로 숨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양모(59ㆍ여) 씨는 간호사인 맏딸을 작년 부산으로 시집을 보냈다. 서른이 넘어 지인 소개로 만난 사람과 결혼에 골인한 딸은 현재 임신을 계획 중에 있다. 벌써부터 딸은 나중에 애가 태어나면 엄마가 내려와 키워주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지만, 양 씨는 그때마다 자기 자식은 자기가 키워야 된다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이번 어린이집 사건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고 한다. 양 씨는 “딸이 결혼하기 전부터 애는 네가 키우는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해왔지만 막상 우리 손주가 어린이집에서 혹여 나쁜 사람들에게 손찌검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대구의 서모(72ㆍ여) 씨는 현재 딸과 같이 살면서 외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서 씨는 “몸이 힘들어 (외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며 “하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아 일찍 데리고 가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한참 보고 오곤 한다”고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친정엄마들은 이번 어린이집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손수 딸을 키워준 것도 모자라 손주까지 돌봐줘야 한단 바보같은 모정(母情)에 이 모든게 자기 잘못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서경원ㆍ서지혜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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