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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최정호]문제의식 없는 사회
지난해 10월,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축하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사인사가 아닌, ‘범죄 용의자’가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에 대한 비난에 사과하는 행위였다. 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지만 사람들은 분노했다.

우리 사회가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유출됐다는 뉴스와 함께 수백, 수천억원 규모의 집단 소송도 함께 시작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내가 쓴 과거 글, 또는 나와 관련된 평판을 지워주는 직업이 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민감한 프라이버시가, 남에게까지는 아직 아닌 모양이다. 심지어 이 남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서 인터넷에 올리며 스스로를 사회 정의를 실현한 영웅으로 생각한다. 대한항공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 이야기다.

이달 초 조 전무가 구속 직전에 놓인 언니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 공개됐다. 심지어 문자 메세지가 담긴 휴대폰의 사진까지 그대로 나왔다. 언니 조현아 부사장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것을 찍은 것이다. 검찰은 이를 수사 자료로 첨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제출했고, 이것이 다시 지면으로, 또 인터넷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수사자료가 유출됐다는 점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판사나 법원 직원, 또는 관련 서류를 만든 검찰이나 검찰청 직원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알아서도 안된다. “직무상 알게 된 통신제한조치에 관한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판사건 검사건, 또는 관련 기관 직원이건 누군가는 매우 심각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점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아주 극소수가 이 문제를 주목했지만, 그나마도 “사회 정의를 위한 행위”였다는 변명이 전부였다.

‘땅콩 회항’으로 나타난 고질적인 갑의 횡포를 그동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으로 겪어왔기에 ‘난생 처음 감옥에 가게 된 언니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매우 사적인 문자’, 또는 ‘자신들을 배반하고 이것저것 밖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사적인 분노’로 이해해주길 기대하는 것까진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갑질’을 한 ‘공공의 적’에게 절대 다수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개인정보보호에 목소리를 높혔던 우리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대중의 ‘카타르시스’ 앞에서는 불법적인 과정도 ‘정의’로 포장되는 순간인데 말이다. ‘카카오톡 사태’ 당시 텔레그램 망명운동에 앞장설 정도로 ‘개인정보보호’에 선구자였던 우리들은, 불과 2달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또 다른 이슈가 나왔을 때, 그 때는 정치인, 시민단체, 그리고 우리가 어떤 태토를 보일지 스스로가 궁금할 뿐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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