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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빈곤시대…한국인 4명 중 1명은 ‘상대적 빈곤’ 경험

[헤럴드경제=서경원ㆍ배두헌 기자] 실직과 투자실패에 따른 미래 불안으로 부인과 어린 두딸을 살해한 서울 서초동 세모녀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새로운 차원의 빈곤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 대부분이 춥고 배곯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넘어 자기기준과 주위와의 비교가 불행감의 척도가 되는 상대적 빈곤의 나라가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대적 빈곤감이 극에 달한 것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 강모(47)씨가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주된 이유로 꼽힌다. 

명문 사립대를 나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까지 가진 전형적인 엘리트 중산층이었지만, 동료집단 이탈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절대궁핍 보다 무서운 상대적 박탈감 사회문제 대두=전문가들은 상대적 빈곤이 야기하는 결과가 절대적 빈곤보다 오히려 더 파괴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같이 못 살 때보단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나 집단과의 비교 속에서 갖는 상대적 좌절감이 개인의 탈이성적 범죄를 유도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사회혁명 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경기가 극단적으로 침체됐을 때보단 경기 호전 후 다시 악화됐을 때 발생하게 된다”며 “상대적 빈곤감이 절대적 빈곤감보다 충격과 좌절 면에서 훨씬 더 크고 현대인들이 이를 쉽게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사회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이다. 2030 세대 중 상당수는 저임금이나 무급 인턴을 뜻하는 ‘열정페이’에 지쳐 있고, 늘어나는 학자금 빚 부담 속 높은 취업문 앞에서 절망을 맛보고 있다. 이러면서 아버지 세대에 있던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4050 세대는 퇴직 전후로 중산층 탈락에 대한 위기감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은퇴 후 고령화에 접어든 6070 세대는 전성기에 비해 현저히 저하된 생활수준과 주요자산 처분으로 상대적으로 큰 궁핍 의식을 느끼고 있다
우리사회가 민족 특성상 상대적 빈곤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는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남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걸 감내하기 힘들어하는 정서가 강하다”며 “이번 세모녀 사건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예민함이 개인적 강박과 연결돼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급차라든지, 아파트 브랜드라든지 우리 사회 곳곳에는 배타적 구획들이 있고 그 안에선 상대적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상대적 빈곤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의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만4427명으로 전년대비 247명 증가했다. 하루 평균 39.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인 12.1명을 훌쩍 넘는 수치다.

▶한국인 4명중 1명은 상대적 빈곤 경험=커지는 빈부격차 속에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지난 3년간 ‘상대적 빈곤’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에게 ‘낙수효과’, 즉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많은 투자가 이뤄져 경기가 부양돼 결국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는 허울좋은 구호일 뿐이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ㆍ복지조사로 본 가구의 동태적 변화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사이 ‘상대적 빈곤’을 경험해본 인구의 비율은 25.1%에 달했다.

상대적 빈곤이란 소득 상위 50%에 해당하는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상태를 뜻한다.

서초 세모녀 살인범 강모씨[헤럴드경제DB사진]

2011년의 소득 상위 50%는 2024만원이었고 2012년 2129만원, 2013년엔 2240만원이었음을 보면, 한국인 4명 중 1명은 1년에 1012만~1120만원도 벌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 상태였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1년만 빈곤을 경험한 비율은 10%였고, 3년 내리 빈곤이 지속된 비율도 9.3%나 됐다.

같은 기간 빈곤층 100명 중 35명(34.6%)은 빈곤에서 탈출했지만, 빈곤층이 아니었던 100명 중 7명(7.4%)은 빈곤의 늪에 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구주가 비취업 상태에서 취업에 성공한 경우 ‘빈곤탈출률’은 40%에 달했지만, 반대로 취업 상태였다가 일자리를 잃게된 경우엔 ‘빈곤진입률’이 31.6%였다. 취업 여부가 빈곤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취업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감안하면, 빈곤진입률은 연령 증가에 정비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 가구주의 나이가 60세 이상인 경우 2012년 비취업 상태였다가 2014년 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13.7%에 그친다. 이에 60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탈출률은 16.8%에 불과하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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